지난해 7월 '코리안 특급' 박찬호(41)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감사 글을 남겼다. 광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박찬호의 뒤늦은 은퇴식이 열렸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3년차에 우연히 루 게릭의 은퇴식을 봤다. 훗날 내 은퇴식을 상상했는데 그 꿈을 이뤘다"며 감격해 했다. IMF시절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줬던 '영웅' 박찬호에게 팬들은 기립박수와 존경을 보냈다.
박찬호가 언급한 루 게릭의 은퇴식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뉴욕양키스의 캡틴이자 2130경기 연속 출전, 역대 1루수중 가장 화려한 타격을 자랑한 강타자, 하지만 근위축성 측삭경화증이라는 희귀 불치병으로 38세의 짧은 삶을 살다간 루 게릭. 1939년 7월 4일(미국의 독립기념일) 양키스타디움에는 6만1808명의 관중이 꽉 들어차 사랑하는 이를 그라운드에서 보낸다. 베이브 루스의 연설이 끝나자 루 게릭이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청중 앞에 섰다. "오늘, 저는 제가 세상에게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길수 있다면 오른팔도 내줄수 있는 나의 팀 양키스 뿐만 아니라 라이벌 뉴욕 자이언츠에서도 선물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고통스런 질병을 앓고 있지만 멋진 삶을 살았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나중 밝혀진 사실은 게릭의 손가락과 갈비뼈 등 온몸에 부상과 골절이 있었다는 것이 병원검진 결과 알려졌다. 1995년 칼 립켄 주니어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56년간 이어졌던 '철인' 연속출전기록은 인내의 열매였다.
뉴욕양키스는 그의 등번호 '4'를 야구 역사상 첫 영구결번시켰다. 전미야구기자협회는 그해 유예기간없이 즉각 게릭을 명예의 전당에 가입시켰다.
이후 세상을 떠나기전 1년간 그는 뉴욕시 가석방 위원회 감독관으로 일했다. 교정시설에서 나름대로 봉사를 했다. 엄청난 강연료와 행사 초대가 쇄도했지만 거절했다. 교정시설에 나갈때면 기자들도 피했다. 양키스타디움에 있는 루 게릭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한 남자가 있었다. 예의 바른 신사. 2130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세운 이 위대한 선수는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게릭은 선수이기 전에 사회에선 모범이 되는 한 명이 '신사'였다.
김동주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친정팀 두산을 나와 타팀 이적을 노렸지만 여의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은퇴식 얘기가 나온다. '두목곰'으로 불리며 17년간 두산에서만 1625경기에 나서 통산타율 3할9리 273홈런-1097타점을 올렸다. 성적만 놓고보면 레전드급이다.
하지만 여론은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 과연 김동주에게 은퇴식을 열어주는 것이 맞느냐, 아니냐로 맞서고 있다. 두산 구단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곳 저곳 눈치를 보고 있다. 김동주는 두산을 나갈때 모양새가 좋지 않았고, 몇몇 동료들과는 매끄러운 관계가 아니었다. 수년간 김동주를 뒷바라지한 구단 직원들은 김동주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닫는다. 천부적인 야구재능에 비해 늘 리더십 부족 지적이 나왔던 김동주.
KT고위관계자는 김동주 영입에 대해 "조범현 감독의 요청에 의해 협상을 하기는 했지만 내부적으로 큰 고민을 했다. 협상이 결론된 현 결과에 대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생팀 KT로선 몇 억원이 아까웠다기 보다 팀분위기를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었다는 부연설명도 했다.
예전같았으면 이런 논란도 크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SNS와 온라인 등 IT의 발달은 정보공유를 좀더 쉽게 한다. 눈은 도처에 있고, 비밀스런 이야기는 어느새 전달된다. 과연 선수의 사생활과 경기력을 연결시키는 것이 옳으냐 아니냐를 놓고 갑론을박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은퇴식은 존경받는 선수들의 특권이라는 점이다. 기록은 당연히 가치있다. 재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땀이 없었다면 훌륭한 성적이 나올리 만무하다. 하지만 존경은 야구를 뛰어넘는 것이다. 그 시작은 가슴이다. '나도 저 선배처럼 살아야겠다'는 후배들의 마음, '당신을 나의 영웅으로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팬들의 마음이야말로 필수요소다. 현재로선 김동주 본인이 은퇴식을 원하는지 여부도 불투명한 현실이다. 기자 개인적인 바람은 김동주가 최영필처럼 오갈데 없는 신세에도 야구에 대한 끈을 놓지않고 최선을 다해 내년에 화려하게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마도 그런 시간이 온다면 여론은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스포츠 1팀장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