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감독들은 국제대회에 참가하면 확고한 베스트 11을 짜놓고 대회를 운영한다. 특히 결승전을 앞둔 감독이라면 더욱 기존 베스트 11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울리 슈티릴케 A대표팀 감독(61)은 달랐다. 변화를 택했다. 끝까지 모험을 강행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31일(이하 한국시각) 개최국 호주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깜짝 놀랄만한 베스트 11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왼쪽 측면 공격수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왼쪽 풀백 자원인 박주호(28·마인츠)가 섰다. 박주호는 조별리그 3경기, 8강, 4강 등 5경기에서 기성용(26·스완지시티)과 함께 중원을 사수했다. 그러나 공중볼 장악이 중요해진 결승전에서 1m76의 단신인 박주호의 포지션 변경은 불가피했다. 박주호 대신 중원에서 공중볼 싸움을 위해 장현수(24·광저우 부리)가 부름을 받았다.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용 가능한 장현수는 1m87의 큰 키를 보유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승부수는 전반에 통했다. '박주호 시프트'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다. 날카로운 공격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던 예상을 뒤엎었다. 박주호는 전반 5분 재빠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수 두 명을 제치는 깜짝 돌파로 호주 수비진을 긴장시켰다. 당시 이반 프란지치의 경고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의 활동 범위는 왼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윙포워드와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왼쪽 풀백 김진수의 오버래핑 때는 빈 공간의 커버 플레이도 돋보였다.
하지만 상대의 기습 슈팅에 실점을 당한 뒤 후반부터는 박주호의 시프트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계속된 악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후반 19분 남태희와 이근호를 교체한 뒤 이해할 수 없는 교체카드가 나왔다.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26분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주호를 결국 빼야만 했다.
전술 변화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기성용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왼쪽 측면으로 이동했다. 한국영과 장현수가 더블 볼란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또 다시 이해하기 힘든 교체가 이뤄졌다. 후반 43분 공격수 이정협 대신 센터백 자원인 김주영이 투입됐다.
또 다시 전술의 변화가 생겼다. 중앙 수비를 보던 곽태휘가 최전방 공격수로 보직을 옮겼다. 곽태휘는 '수트라이커'였다. 대구공고 시절 공격수로도 활약했을 만큼 득점 감각이 뛰어나다. 세트피스 상황에선 출중한 헤딩력도 보여준다. 계산된 용병술은 약간의 효과를 봤다. 후반 추가시간 좀처럼 터지지 않던 손흥민이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경기를 연장으로 몰고갔다.
하지만 예상된 문제는 연장전부터 생기고 말았다. 매끄러운 공격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공격수 출신이라고 하지만 그 동안 수비만 봐오던 선수다. 수비수는 공격수들의 움직임과 확연히 다른 플레이를 한다. 때문에 곽태휘의 효과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라운드에는 수비수 7명이 존재했다. 3명의 공격수만으로는 연장전에서도 힘과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은 호주를 넘기 힘들었다. 결국 연장 전반 추가시간 제임스 트로이시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았다. 이미 교체카드를 다 써버린 탓에 연장 후반에도 분위기를 전환시킬 요소가 부족했다. 슈틸리케 모험의 끝은 눈물이었다. 변수를 최대한 줄여야 했던 결승전에서 스스로 변수를 키운 슈틸리케 감독이다. 이번 결승전을 통해 안정된 베스트 11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으면 한다.
시드니(호주)=김진회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