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브리즈번스타디움.
호주의 에이스 팀 케이힐(36·뉴욕 레드불스)은 예민한 모습이었다. 한국에 0-1로 뒤지던 후반 중반 투입된 케이힐은 수비수들과 잦은 신경전을 벌였다. 작은 접촉에도 과도한 액션을 취하면서 한국 수비수들을 자극했고, 충돌 직전의 상황까지 연출했다. 케이힐이 연출한 고도의 심리전은 슈틸리케호를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호주 팬들의 야유가 슈틸리케호에게 송곳이 되어 날아들었다. 슈틸리케호는 악전고투 끝에 1골차 승리를 간신히 지켰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노련함은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다.
케이힐은 결승전을 앞두고도 한국 수비진을 자극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전에서 수비수 2~3명의 마크를 당하는 바람에 볼을 3번 밖에 만지지 못했다. 상대는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90분 내내 그럴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우리 동료가 그 보상을 얻을 것이다." 케이힐은 "우리 팀은 지금가지 10명이 골을 넣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날 때 골을 넣은 선수 숫자가 11, 12, 13명이 되기를 바란다"고 큰소리 쳤다. 조별리그부터 4강전까지 무실점 행진을 펼친 한국을 의식한 발언이다.
케이힐의 심리전은 결승전 그라운드를 수놓을 것으로 보인다. 기량 뿐만 아니라 심적 요인도 큰 영향을 끼치는 승부의 무게감을 감안하면 조별리그 당시보다 더 거칠고 민감하게 반응할 공산이 크다. 8만석 규모의 호주스타디움 대부분을 가득 체울 호주 팬들의 도움까지 더해져 힘도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심리전에 말려들기 시작하면 결국 준비한 전략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
케이힐도 결국 11명 중 1명의 선수일 뿐이다. 평정심은 슈틸리케호를 승리로 인도할 가장 큰 무기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