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을 사들인 롯데그룹이 이 회사 감사로 지난해 10월 그룹 정책본부 운영팀장을 보내는가하면 계열사 물류를 맡고 있는 롯데로지스틱스가 롯데쇼핑의 물류설비와 시스템을 인수하면서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등 택배사업 진출을 가시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롯데는 택배사업 진출 가능성이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재계와 증권가는 롯데그룹이 사실상 택배사업을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롯데그룹 택배사업 진출에는 어떤 사연이 얽혀있는 것일까.
▶택배 진출 사실 아니라더니 '5개월의 기록'은 사실처럼 보여
롯데그룹은 지난해 9월 '이지스1호'라는 SPC를 통해 현대그룹 구조조정과정에서 매물로 나온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을 사들였다. 현재 현대로지스틱스의 대주주는 '이지스1호'로, 이지스1호의 지분은 오릭스가 35%, 롯데쇼핑이 35%, 현대상선이 30%씩 보유하고 있다. 롯데는 오릭스가 투자기간 종료 후 현대로직스틱스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부여받았다.
김민지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당시 보고서를 통해 "롯데 물류계열사인 롯데로지스틱스가 현금 창출력이 떨어지지만 돈을 빌려 현대로지스틱스 인수에 200억원 수준을 투자했다"며 "단순 투자라면 자금력이 많은 롯데쇼핑이 해도 되지만 굳이 자금 여력이 없는 롯데로지스틱스가 투자를 담당할 필요가 없는 상황으로 롯데의 택배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한 달 뒤인 지난해 10월 박현철 롯데쇼핑 전무를 감사로 선임했다. 박 전무는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팀장을 겸임하고 있는 인사다. 감사는 일반적으로 경영진을 견제하는 책임과 권한을 갖는 자리다. 대주주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인사가 감사가 된 만큼 현대로지스틱스가 사실상 롯데의 지배권 아래 위치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례는 또 있다. 지난 26일 롯데그룹 계열사 물류를 담당하고 있는 롯데로지스틱스는 전자공시를 통해 롯데쇼핑으로부터 온라인배송센터 물류설비와 시스템을 95억9000만원에 인수했다고 밝혔다.
증권가뿐만 아니라 재계도 롯데의 택배사업 진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재계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화두와 택배사업이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현대로지스틱스와 롯데로지스틱스를 통해 택배사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본다.
▶신동빈 회장, 옴니채널 강조… 택배사업 필요성 높아
신동빈 회장은 취임 이후 옴니채널 서비스를 강조하고 있다. 옴니채널이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바일 이 융합된 유통 서비스를 말한다. 롯데는 이를 위해 옴니채널 연구센터인 '롯데 이노베이션 랩'을 설립, 운영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옴니채널 서비스를 위해선 물류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소비자가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 물건을 구매할 경우 배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구매해도 배송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물류사업은 옴니채널 서비스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 물류 뿐 아니라 택배 관련 영역까지 확대가 불가피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는 유통산업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다"며 "롯데의 물류사업은 자체 물량으로도 상당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사업영역으로 택배사업까지 진출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통해 상당한 매출을 올릴 수 있어 그룹 차원에서 매력적인 영역"이라고 말했다. 택배사업을 롯데의 신성장동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택배사업은 최근 한국경제에서 '황금 알을 낳는 사업 분야' 중 하나다. 택배 시장 규모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성장세도 눈부시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 시장 매출액은 2조9757억원이다. 택배물량은 16억2325만여개로 집계됐다. 각각 전년대비 7.5%, 6.4%의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통합물류협회는 올해 택배 물동량 성장률도 7%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경기불황을 겪고 있던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성장세다. 모바일 시대를 맞아 소셜커머스 시장이 확대되고, 해외직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택배사업은 지속 성장이 가능한 사업 분야 중 하나다.
그러나 롯데그룹은 택배사업 진출 가능성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옴니채널 경영전략을 꼽으며 투자 등을 이유로 사업 진출 얘기를 하지만 재무적 투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롯데그룹이 택배사업 진출을 극구 부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 대한 부담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 부실시공을 비롯해 최근 기업 이미지의 타격이 심각한 상황이다. 택배사업 진출이 자칫 택배시장 출혈경쟁 유발과 일감몰아주기 논란 등으로 확대돼 '대기업의 횡포'로 비춰질 수 있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분위기다. 물류 회사에 오너일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꼼수경영'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피할 수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롯데에게 택배사업은 그룹 차원에서 매력을 느낄 만한 사업 중 하나로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진출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며 "제2롯데월드 사태로 좋지 않아진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택배사업 진출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