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아서 잊어먹을까봐 수첩에 다 적었죠."
한화 이글스 투수들은 요즘 제대로 입에서 단내가 난다. 가뜩이나 훈련량이 많기로 소문난 '김성근식 캠프'다. 그런데다가 김 감독이 캠프 출발에 앞서 "이번에는 투수들을 집중 조련하겠다. 야수들의 타격과 수비는 코치진에게 일임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투수들은 일본 고치 캠프 도착 첫 날부터 김 감독의 '잠자리 눈'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요령따위 부릴 여유가 없다. 일단 김 감독부터가 '휴식'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전체 선수단의 오전 러닝과 스트레칭 등이 끝나면 잠깐 동안 수비 훈련을 지켜보다가 오전 11시쯤 곧바로 불펜으로 향한다. 거기서 오후 늦게까지 투수들을 조련하는 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김 감독의 점심시간은 팀에서 가장 늦다. 오후 3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고, 19일에는 4시15분쯤에야 젓가락을 들었다.
그래서 선수들 역시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70대 노 감독의 뜨거운 열정이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를 만든다. 투구 폼 하나하나를 일대일로 가르치는 정성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투수가 없다. 특히 좌완 베테랑 투수 마일영(34)은 누구보다 더 많은 지적을 받으며 구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메모광'으로도 진화하는 중이다.
마일영이 '메모광'이 되어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투구폼과 공을 던지는 요령에 관한 김 감독의 지도가 워낙 방대해서 듣고 기억하는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 마일영은 19일 불펜피칭에서 무려 181개의 공을 던졌다. 1월말이 되기도 전에 불펜피칭에서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진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결코 '무리'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미 그에 대한 준비도 충분히 해왔고, 김 감독 역시 선수들에게 무리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투수들에 비해 많은 공을 던졌다는 건 그만큼 김 감독의 지도를 집중적으로 받았다는 뜻이다. 발전 가능성이 없었다면 김 감독이 한 투수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할 리 없다. 안그래도 "(선수들을 성장시킬)시간이 부족하다"며 본인의 식사시간도 가장 나중으로 미룬 김 감독이다. 현역시절 좌완투수였던 김 감독이 같은 좌완인 마일영의 문제점들을 훤히 꿰뚫고 있는 듯 하다.
마일영 역시 이런 디테일한 지도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많아 바로바로 수첩에 메모를 해야 한다. 마일영은 "하도 많은 점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을 던질 때 오른쪽 어깨가 빨리 열리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크게 공감하고 있던 부분"이라면서 "그 밖에도 여러가지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잊어버릴까봐 수첩에 적어둬야 했다.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지적 사항들을 모두 해결한다면, 마일영의 화려한 비상이 다시 이어질 듯 하다.
고치(일본 고치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