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중원사령관' 기성용(26·스완지시티)에게 호주 브리즈번은 '제2의 고향'이다. 2002년부터 3년 6개월간 브리즈번에서 학교를 다녔다. 2001년 초부터 2005년 9월까지 이어진 4년 6개월의 호주 유학 생활 중 대부분을 브리즈번에서 보냈다. 태극마크를 꿈꾸던 중학생 기성용은 어느덧 한국 축구를 넘어 유럽 빅리그에서도 인정받는 톱클래스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그리고 10년만에 왼팔에 주장 완장을 차고 14일(이하 한국시각) 브리즈번을 다시 찾았다. 기성용에게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슈틸리케호의 일원으로 다시 찾은 브리즈번. 기성용은 또 하나의 추억을 남길 준비를 하고 있다. 2015년 호주아시안컵 조별리그 A조 1위를 위한 개최국 호주와의 결전이 17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펼쳐진다. 기성용의 모교인 브리즈번의 존 폴 칼리지(초등~고등학교 과정)도 특별한 선물로 기성용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호주 브리즈번의 추억, 즐거운 축구
기성용의 호주 유학생활은 2001년 초에 시작됐다. 기성용의 부친인 기영옥 광주시축구협회장은 국가대표 출신의 김판근 감독이 호주 시드니에 축구 아카데미를 개설하자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기성용을 홀로 호주로 보냈다. 당시 축구 꿈나무들이 대부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기성용의 호주행은 사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보험'이었다. 기 회장은 "당시 성용이가 랭킹 3위 안에 들었다. 하지만 축구로 성공할지는 불투명했다. 축구를 그만 둘 경우 영어라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호주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호주 유학은 '신의 한 수'였다. 기성용에게 호주는 학업, 축구, 성장에 최적의 장소였다. 2002년부터 김판근 축구 아카데미가 시드니를 떠나 브리즈번의 존 폴 칼리지와 업무 제휴를 맺고 방과 후 클럽활동반을 운영하게 되면서 기성용은 학교에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게 됐다. 오전에는 학교에서 정상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마음껏 볼을 찼다. 주말리그도 참가했다. 기성용에게는 천국이었다. 영어 공부도 충실히 했다.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30여명의 축구 유학생 중 기성용의 성적은 상위권이었다. 호주에서 스테이크를 즐겨 먹다보니 1m60이던 키도 1~2년 새 12cm나 훌쩍 컸다. 호주 유학이 기성용에게는 축구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됐다. 기 회장은 "한국은 흙에서 볼을 차는데 잔디에서 공을 차서 킥이 부드럽고 몸이 유연하다. 중학생 때 무리해서 운동을 하지 않아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몸 밸런스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일찌감치 영어를 익혀 영국에 진출한 이후 새 환경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기성용은 아직도 브리즈번에서 보낸 중학생 시절을 행복했던 기억으로 담아두고 있다. 기 회장은 "성용이가 호주에서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아무래도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 고생했지만 성용이에게는 가장 즐겁게 축구를 했고 좋은 추억을 많이 남겼던 시기였다"고 덧붙였다.
▶존 폴 칼리지의 특별한 응원과 함께 뛴다
기성용이 모교인 존 폴 칼리지도 기성용을 특별한 학생으로 기억한다. 기성용이 활약할 당시 존 폴 칼리지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기성용과 함께 김주영(27·상하이 둥야) 오반석(27·제주) 김홍일(28·수원FC) 등 한국 선수들이 팀의 주축을 이뤘다. 존 폴 칼리지는 이들의 활약에 호주 퀸즐랜드주리그에서 2연패(2004년~2005년)에 성공했고, 주대표로 출전한 빌터너컵(호주 U-15 전국 대회)에서도 2연패(2004년~2005년)를 달성했다. 기성용은 존 폴 칼리지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다. 존 폴 칼리지가 2년간 방학마다 영국 투어를 갔는데 기성용의 활약을 지켜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첼시, 풀럼, 레딩의 유스팀이 기성용에게 정식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하기도 했다. 이후 존 폴 칼리지는 2009년부터 신태용 A대표팀 코치가 운영하는 TY스포츠 아카데미와 업무 협약을 맺어 지금도 퀸즐랜드주리그의 강호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존 폴 칼리지도 특별했던 선수, 기성용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에 피터 포스터 존 폴 칼리지 교장 겸 이사장은 기성용이 활약하는 한국이 브리즈번에서 호주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는 소식을 듣고 응원단을 꾸렸다. 기성용의 호주 유학시절부터 아카데미를 관리했던 김의석 TY스포츠아카데미 이사는 "피터 포스터 이사장이 '학교 출신 선수가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꼭 경기를 보고 응원하고 싶다'면서 학교 관계자들을 이끌고 응원을 오기로 했다. 기성용과 김주영을 응원하는 플래카드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성용의 후배인 존 폴 칼리지 축구부(TY 스포츠 아카데미) 학생 28명도 응원단에 가세할 예정이었지만 해외 전지훈련 기간과 겹쳐 아쉽게 무산됐다. 기성용이 존 폴 칼리지 출신이라는 것을 호주 언론도 주목하고 있다. 김 이사는 "아시안컵을 앞두고 호주의 ABC 방송사가 학교에 찾아와 기성용과 관련된 취재를 했다"고 덧붙였다.
▶아시안컵 인기남, 호주 넘고 조 1위로
아시안컵이 개막한 이후에도 기성용에 대한 외국 기자들의 관심이 대단했다. 10일 오만과의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두고 외국 기자들의 질문이 기성용에게 쇄도했다. 호주 유학 생활이 화두였다. 이미 기성용의 성장 스토리를 줄줄 꿰고 있었다. 기성용은 호주 유학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호주에서 어렸을 때 있었기 때문에 환경적인 부분이 익숙하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떤 점이 익숙하냐고 다시 질문이 날아왔다. 그러자 "10년이 지났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호주에서 외로움을 견뎠던 경험이 유럽에서 활동할 때 약이 됐다"고 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에서의 우승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태극마크를 달고 뛰겠다'던 10년전 꿈이 이뤄진 것이다. 기성용은 "여러가지가 많이 변했다. 그래도 특별한 건 사실이다. 우승도 간절하다. 이번 대회가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했다. 우승을 위해서는 호주를 넘고 조1위로 8강에 진출하는게 유리하다. 기성용의 몸은 많이 지쳐있다. 영국에서 한국을 거쳐 호주로 넘어왔다. 비행기만 24시간을 탔다. 그러나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슈틸리케호의 '캡틴'이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전의 졸전은 잊었다. 호주전은 기성용의 자존심을 끌어올리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그는 "호주전에선 좀 더 여유롭게 경기할 것이다. 승패 부담을 떨치고 경기장에 들어가겠다"고 다짐했다. 브리즈번(호주)=김진회, 하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