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고개를 넘었다. 8강의 문이 열렸다.
슈틸리케호가 13일(이하 한국시각) 오만에 이어 쿠웨이트를 꺾고 2연승으로 2015년 호주아시안컵 8강에 올랐다. 대한민국은 17일 오후 6시 A조 1위 자리를 놓고 호주와 조별리그 최종전을 치른다.
그러나 낙제점이었다.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슈틸리케호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상처로 얼룩졌다. '쌍용'의 한 축인 이청용(볼턴)을 잃었다. 오른정강이와 발목 사이에 실금이 간 그는 귀국길에 올랐다.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츠)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은 줄감기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1, 2차전에서 베스트 11이 무려 7명이나 바뀌었다. 좀처럼 벌어지기 힘든 이례적인 사건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파격적인 플랜 B를 실험했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의 공백만 크게 느껴졌다. 이청용을 제외한 다른 선수들은 돌아오지만 슈틸리케호는 최악의 위기다.
슈틸리케 감독의 선택은 도박에 가까웠다. 공격 1선에는 이근호(엘 자이시)가 포진했다. 2선의 좌우 측면에는 김민우(사간 도스)와 남태희(레퀴야), 섀도 스트라이커에는 이명주(알 아인)가 출격했다.
대대적인 변화는 혼돈을 몰고 왔다. 휘슬이 울린 후 그라운드가 엇박자로 채워졌다. 개개인이 '외딴 섬'이었다. 조직력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전반 29분까지 단 1개의 슈팅도 없었다. 무기력했다. 전반 30분 첫 기회가 찾아왔다. 김민우의 그림같은 스루패스를 받은 이근호가 1대1 찬스를 맞았다. 그러나 그의 발을 떠난 볼은 골키퍼의 선방에 가로막혔다.
4명의 조합으로는 골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전반 36분 '맏형' 차두리(서울)가 실타래를 풀었다. 폭풍 오버래핑에 이은 자로잰듯한 크로스를 남태희가 헤딩으로 해결했다.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은 슈틸리케호에는 통하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함께 이명주가 빠지고 조영철(카타르SC)이 투입됐다. 오른 측면에 섰다. 남태희는 섀도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변경했다. 후반 30분에는 조커 이정협(상주)이 원톱에 포진한 가운데 이근호가 왼쪽으로 이동했다. 변화만 무성했다. 남태희만 후반 몇 차례 위력적인 장면을 연출했을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나에게 등번호는 숫자에 불과하다. 1번과 23번이 모두 똑같다"고 했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의 공백이 느껴졌다. 플랜 B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서 슈틸리케호의 발거음은 더 무거워졌다. "이렇게 고전할 줄 몰랐다. 새로 투입된 선수들은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슈틸리케 감독의 탄식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포백 수비라인에도 변화가 있었다. 좌우 윙백에 김진수(호펜하임)와 차두리가 위치했다. 중앙수비에는 장현수(광저우 부리)가 새로운 파트너를 맞았다. 김영권(광저우 헝다)이었다. 골문은 김진현 대신 김승규(울산)가 지켰다.
차두리가 유일한 위안이었다. 중앙수비의 불안은 여전했다. 쿠웨이트전에선 장현수가 '폭탄'이었다. 전반 24분 결정적인 실수를 한 그는 후반 14분에도 마크시드에게 뚫렸다.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지만 장현수와 김영권 조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수준 이하인 쿠웨이트의 골결정력에 감사해야 할 판이다. 김진수는 여전히 수비에 약점을 드러냈다.
수비가 흔들리자 미드필더의 부담도 가중됐다. 유일하게 변화가 없었던 '더블볼란치(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스완지시티)과 박주호(마인츠)는 공수 가교 역할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에너지 소모가 워낙 커 집중력을 발휘할 타이밍을 놓치며 후반에는 쿠웨이트에게 주도권을 내줬다.
더 이상 불안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상대 팀의 클래스가 달라진다. 조별리그 최종전 호주전을 필두로 8강 상대는 오만, 쿠웨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팀이다. 현재의 수비 조직력으로는 답이 없다. 공수에 걸쳐 수술이 필요하다. "오늘 경기를 계기로 우리는 우승후보에서 제외될 것이다. 상당한 발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의 고백이다. 그의 위기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