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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 2015년 새해 대중문화계를 강타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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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새해 첫 천만 영화 테이프. '국제시장'이 제일 먼저 끊을 전망이다.

한국 현대사를 가장의 시각에서 담아낸 '국제시장'은 10일까지 누적관객수 922만5803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배급사 집계기준)을 기록했다. '국제시장'은 지난해 12월 17일 개봉, 역대 휴먼 드라마 사상 최고 오프닝 스코어(18만 4972명), 역대 1월 1일 최다관객수(75만 1253명)를 기록하며 개봉 후 4주 동안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굳게 지켜왔다. 여전히 매출 점유율은 42.9%에 달할 정도로 식지 않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국제시장' 흥행 속도는 휴먼 드라마로는 최초로 천만관객을 돌파한 '7번방의 선물'(1281만 1213명)보다 이틀, '변호인'(1137만 5954명)보다 하루 빠른 속도다. 이런 속도라면 천만 돌파는 시간 문제다.



사례2>

김현정, 터보 등 90년대 가수들의 노래가 가요 프로그램과 각종 음원 차트의 상위권을 차지하며 역주행하고 있다.

터보 '스키장에서', 김현정 '그녀와의 이별', '멍', 김건모 '잘못된 만남' 등이 대표적인 곡들. 발매된 지 무려 20년 가까이 된 이 노래들의 갑작스러운 인기 재현. 지난 12월 27일, 1월 3일 두차례 방송된 MBC '무한도전-토토가' 특집을 통한 재조명 후 이어지고 있는 인기 후폭풍이다. '토토가' 특집에서는 터보, 김현정, SES, 쿨, 소찬휘, 지누션, 조성모, 이정현, 엄정화, 김건모 등 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며 추억과 감동을 전했다. '토토가'를 통해 20%가 넘는 시청률을 맛본 '무한도전'은 특집이 끝나자 시청률이 대폭 하락했다.



다른 장르의 두가지 사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2015 새해 벽두부터 문화 전반을 장악하고 있는 강력한 화두, 복고 열풍이다. 방송, 영화, 가요 등 대중 문화계 전반이 복고 열기로 뜨겁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해야 하는 영화와 음반 시장.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다.

'국제시장'의 뒤를 이을 복고 영화도 줄줄이 대기중이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하정우 하지원의 '허삼관'은 1960년대가 배경. 이어 21일 개봉하는 이민호 김래원의 '강남, 1970'은 강남 개발 시대가 배경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음달 개봉을 앞둔 '쎄시봉'도 빼놓을 수 없다. 1970년대 한국 음악계에 포크열풍을 일으킨 '트윈폴리오' 이야기. 당시 음악이 추억을 일깨우며 음원 시장에 여파를 미칠 전망이다.

방송도 마찬가지. 평일 밤 10시대 트렌디한 미니시리즈들이 저조한 시청률로 고전하고 있는 반면 지난해 '응답하라 1994'와 정통 사극 '정도전'은 큰 인기를 모았다. 올해도 정통사극 '징비록'을 비롯, 로맨스형 사극 '빛나거나 미치거나' 등이 출격 준비 중이다. 지난해부터 거센 복고 열기에 휩싸인 가요계의 올 한 해 역시 '백 투더 나인티스'로 돌아가 과거 인기 곡들의 리메이크가 이어질 전망이다.

대중 문화 전반의 복고 열기. 왜 식지 않는 것일까.

우선 문화 소비층의 범위 확장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전파와 확산을 꼽을 수 있다. 40, 50대는 과거 윗 세대에 비해 자기 결정권이 또렷한 세대다. 문화적 욕구가 여전하고 가족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 소비할 줄 아는 세대. 인구도 많다. 경계선상에 선 71년생은 인구 통계학상 가장 많은 숫자를 자랑한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고생한 세대. 대학가기 어려웠고, IMF 직후라 취직도 힘들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 속에서 40~50대는 오히려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정치, 문화 전반에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다. 소비할 의지가 있는데다 소비력도 있고 인구도 많아 문화 상품을 유통하는데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세대로 꼽힌다.

'국제시장'과 '토토가'로 대변되는 최근 복고 열기는 사실상 이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오로지 이들만 움직여서는 이런 신드롬이 가능하지 않았다. 20~30대의 호응이 있었다. '국제시장' 측은 당초 이런 걱정을 했다. "40대 이상의 호응은 예상되는데 10대~30대의 젊은 세대가 얼마만큼 반응할지가 관건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CGV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제시장' 관람 층은 20대, 30대, 40대가 각각 30%, 27%, 28% 선으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10대는 4%, 50대는 8%, 60대는 2% 선이었다. 데이트 세대인 20~30대가 극장 소비를 주도한다는 측면에서 40대 약진이 도드라지는건 사실. 하지만 20~30대도 '국제시장'을 외면하지 않았다.

가요 시장도 마찬가지. '토토가'의 주 시청층은 90년대 가요를 감수성 돋게 소비했던 30∼50대였다. 하지만 '토토가'의 노래를 음원 사이트에서 사용한 연령층은 20대가 절반 이상이었다. 40~50대로 확장된 문화소비가 20대로 전파된 모양새다.

IMF 이후의 장기 불황도 복고의 되살아남에 영향을 미쳤다. 돈과 직장이 없고 꿈과 미래가 없으면 순수한 사랑과 낭만도 남아있기 힘들다. 청·장년층에 모두 사라진 '꿈'이 대중문화의 복고 열기 속에 추억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현실이 팍팍할 수록 과거에 대한 향수는 짙어진다. 사실보다 더 부풀려진 미화된 기억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진취적으로 나가야 할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과거에 매달리는 복고 열기는 어쩌면 위험한 현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현실을 사는 사람들에게 마치 안개같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쉽게 걷히지 않을 것 같다. 스쳐가는 추억팔이로 치부됐던 복고 시장. 앞으로 지속될 공산이 큰 장기 침체 사회 속에서 어쩌면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