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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뮤지컬배우로 거듭난 소녀시대 서현의 열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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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뮤지컬배우로 거듭난 소녀시대 서현의 열연,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가렛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굉장히 미국적인 작품이다. 남북전쟁 시기 남부의 대농장 타라(Tara)를 배경으로 농장주의 딸 스칼렛 오하라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을 프랑스 제작진이 뮤지컬로 만들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국내에 알려진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이 작사, 작곡을 맡았다. 다시 이 작품을 한국 프로덕션이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이선스 무대로 선보이고 있다.

숨가쁜 버전의 전환에도 이 뮤지컬이 공감을 주는 것은 주인공 스칼렛의 삶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한 덕분이다. 아름답고, 도도하고, 때로는 무례하기까지 한 여인이 거대한 역사의 파도 속에서 욕망하고, 사랑하고, 분투하는 모습은 진한 여운과 페이소스를 안겨준다. 모든 것이 파탄난 스칼렛이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다그치며 읊조리는 유명한 대사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거야"를 할 때면 '산다는 게 참…'이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맴돈다.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공감대다.

이런 점에서 가장 신선한 충격은 스칼렛 역의 서현이었다. 사실 방대한 원작을 두 시간 짜리 뮤지컬에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캐릭터 역시 스토리를 따르되 '느낌'으로 전달해야 한다. 서현은 뮤지컬 신인임에도 기대 이상의 에너지를 보여주며 쉽지 않은 역을 소화했다. 그녀의 뮤지컬 출연은 '해를 품은 달'에 이어 두번째다. '소녀시대의 노래 잘 하는 멤버'라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따로 들으니 훨씬 좋았고,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노래에 감정을 싣는 힘은 베테랑 배우 못지 않았다. 짧은 커리어에도 여러 색깔과 묘한 매력을 지닌 여인의 삶을 무난하게 보여줬다. 군데군데 연결 대목에서 서툰 연기가 눈에 띄었지만 합격점을 받기엔 충분하다. 비슷한 걸그룹 출신 뮤지컬 선배인 옥주현의 신인 때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품격과 부(富)를 갖춘 섹시한 능력남 레트 버틀러 역의 임태경도 최고의 뮤지컬 스타답게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스칼렛과 균형을 이루었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스칼렛과 레트 버틀러의 2인 구도인데, 두 배우가 캐릭터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조연과 앙상블의 하모니, 나아가 작품 전체가 서서히 살아났다.

프랑스 뮤지컬은 대개 음악과 춤, 무대세트가 분리돼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무대와 의상을 사실적으로 화려하게 꾸미고, 음악 또한 팝발라드 스타일을 많이 가미해 생각보다 '프랑스 냄새'가 덜 난다. 파워풀한 안무만은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춤 자체는 멋있었지만 스토리라인과는 동떨어져 보였다.

이 가운데 무대 세트는 공을 많이 들였다. 정원과 무도회 장면이 인상적이고, 영상도 작품 분위기를 살리는데 일조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말 번역에서 튀는 대목이 있는 것은 아쉽다. 좀더 순화하고 매끄럽게 다듬을 필요가 있을 듯 하다. 2월15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