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가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울리 슈틸리케 감독(61·독일)의 숙명이다. 싫든, 좋든 '히딩크 마법'은 그가 넘어서야 할 벽이다.
2015년 호주아시안컵이 개막됐다. 슈틸리케 감독의 첫 무대가 드디어 열린다. 10일 오후 2시(이하 한국시각) 호주 캔버라스타디움에서 휘슬이 울린다. 상대는 중동의 복병 오만이다.
슈틸리케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의 아픔을 뒤로하고 10월 출항했다. 5차례의 평가전(3승2패)을 치렀다. 희비가 공존했지만 예열에 불과하다. 아시안컵이 슈틸리케 감독의 첫 번째 진검승부의 장이다.
그는 시대의 요구와 맞물려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7년 만의 외국인 감독 시대를 열었다.
기대반, 우려반이었다. 현역 시절의 슈틸리케는 화려했다. 스페인 프라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했다. 미드필더와 수비를 넘나들었다. 외국인 선수상을 무려 4차례나 수상했다.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주목받았고, 10년간 독일 대표선수로 활약했다. A매치 42경기에 출전했다.
그러나 지도자로는 빛을 보지 못했다. 1988년 은퇴 이후 스위스 국가대표팀 감독에 선임됐다. 이후 스위스와 독일 등에서 클럽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독일대표팀 수석코치와 코트디부아르 감독도 역임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카타르리그의 알 사일리아와 알 아라비 감독을 지냈다. 하지만 사령탑으로의 길은 선명하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슈틸리케 감독을 '숨겨진 원석'으로 판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도자 인생에서 마지막 도전이라고 했다. '히딩크 마법'에 도전장을 냈다.
한국 축구 팬들에게 13년 전의 향수는 여전하다.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연출한 2002년 한-일월드컵의 4강 기적이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에는 '신적 존재'로 자리잡았다. '외국인 사령탑=히딩크'라는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포스트 히딩크'는 존재하지 않았다.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요하네스 본프레레→딕 아드보카트→핌 베어벡(이상 네덜란드) 감독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돌고, 돌아 외국인 감독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첫 발걸음에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다고 했다. 팬들의 가슴에 와 닿는 축구, 이기는 경기를 해야한다고 했다. 원점에서 재출발했고, 변화는 있었다. 박주영(알 샤밥)이 아시안컵 최종엔트리에서 제외되고 A매치 경험이 전무한 이정협(상주)이 승선한 것은 최대 이슈였다. 남태희(레퀴야) 조영철(카타르SC) 등 중동파가 신주류로 등장했다.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은 정성룡(수원)과 김승규(울산)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히딩크 감독처럼 '멀티 플레이어'를 선호한다.
하지만 과정 만큼 결과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새해벽두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아시아라는 우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는 데 신경을 쓰고 세계 축구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아를 넘어야 세계와 맞닥뜨릴 수 있다. 아시안컵은 물론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도 마찬가지다.
55년 만의 아시안컵 정상 도전이다. 1956년과 1960년 1, 2회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정상과 인연이 없었다.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호주아시안컵은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에 연착륙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