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삼성-전주 KCC전의 '하승진 사태' 1차 책임은 관중이 져야 한다.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다 한달 만의 복귀전을 치렀는데 상대선수의 가격으로 코뼈가 부러졌다. 코피를 철철 흘리며 퇴장하는 선수에게 이 관중은 "어디 부러졌냐? 꾀병 부리지 마라"는 비아냥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언어 폭력이다.
KBL은 하승진에 대한 징계부터 검토하겠다는 입장인데 본말전도다. 홈구단의 관중관련 규정을 보다 강화하고 관중의 의식전환을 위한 캠페인 등 제도개선 의지 표명이 우선이다.
결과적으로 문제의 해당 관중은 참지 않았고, 하승진은 참았다. 참아도 많이 참았다. 하승진의 행동이 대단히 위험천만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만약 하승진이 그 순간 참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진행요원 몇 명이 붙든다고 해서 열받아서 거칠어진 거구의 하승진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가 분을 삼키지 않았다면 아마도 2007년 2군 경기에서 자신의 가족을 욕한 관중에게 다가가 "당신같은 사람때문에 한국축구가 발전하지 못하는 거야"라고 일갈하던 안정환이 됐을 지도 모른다.
서울 삼성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상대팀 선수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보통 팬이라면 얄미울 땐 혼잣말로 "재수없다"고 할 수 있다. 뒤에선 나랏님 욕도 한다. 그렇지만 면전에서 스스럼없이 말을 뱉었다면 이는 인격모독이다.
해당 관중은 장기간 농구장에 들어와선 안된다. 일벌백계하는 차원에서라도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성장경제에 돈이 최우선 되던 시절. 우리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상점이나 기업이나 대가를 지불하는 사람이 최고였다. 이제는 그 정도가 지나쳐 고객의 갑질에 상처받는 감정 노동자의 아픔과 '라면 상무', '땅콩 회항' 등 일그러진 선민의식이 오히려 문제다.
그래도 어떤 이는 라면 때문에 옷을 벗었고, 또 다른 이는 땅콩(사실은 마카다미아) 때문에 구속됐다. 처벌이 동반됐기에 문제제기는 설득력을 얻고 우리는 올바른 길로 좀더 전진할 수 있다. 선수들을 해코지하려 한 관중을 엄중징계했다는 일은 국내에선 들은 적이 없다.
2007년 그때 안정환이 관중석(서울월드컵경기장 옆 보조구장)으로 뛰어올라왔을때 기자는 관중석 뒤에서 취재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해당 관중이 안정환에게 지속적으로 욕설을 하고 부인을 폄하하는 발언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과연 나였으면'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마도 참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이라면 누구나 참기 힘든 상황이다.
1999년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7차전이 벌어졌던 대구구장. 기자는 난장판을 현장에서 목도했다. 홈런을 친 상대 선수에게 물병을 던지고, 삶은 달걀을 던져 국부에 맞혔던 관중들. 롯데 외국인선수 호세는 방망이를 집어 던졌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로는 당시 원정팀 덕아웃 유리창도 모조리 깼다. 소형차를 몰고 출장을 갔던 기자는 서울 넘버를 달았다는 이유로 차량 범퍼를 발로 차는 관중도 봤다.
안정환은 1000만원이라는 최고 벌금을 냈고, 호세도 벌금 300만원과 출전정지 10경기 처분을 받았다. 그렇다면 관중은? 아무 일 없었다.
점원에게 먼저 상식이하의 발언을 해놓고 점원이 어필하면 "감히 손님에게"라며 언성을 높이는 소비자, 경기장에선 입장료를 낸 관중이 주인이라며 막무가내로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팬. 이들은 자격미달이다. 이들로 인해 다른 이들은 고급의 서비스, 질높은 경기력을 제공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 몰지각한 팬을 의식있는 다수의 팬들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그들이 없어도 프로농구는 돌아간다. 그들로 인해 상처받은 선수들의 인권과 고통받는 가족들, 실의에 빠진 진짜 팬들의 마음은 그 알량한 몇푼보다 수천배, 수만배의 값어치가 있다.
더 참지 못하고, 더 못 들은 척 하지 못하고, 인간 이하의 감성으로 더 눈을 내리깔지 못한 하승진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면. 그건 다음, 그 다음 일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