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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박언주-혜진 자매 "힘내라는 말, 문자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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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라져야 언니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 같아서 이를 악물었어요."

"하루하루가 특별하죠. 힘들 때 혜진이가 모바일메신저로 '힘내'라고 말해요."

올 시즌 '통합 3연패'에 도전중인 우리은행의 우승이 누구보다 간절한 이들이 있다. 바로 2년만에 팀에서 재회한 박언주(27) 혜진(25) 자매다.

2011~2012시즌으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박언주가 삼성생명(현 삼성)에서 우리은행으로 트레이드되면서 여자 프로농구 최초로 자매가 한 팀에서 뛰는 모습이 연출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시즌을 마치고 FA 계약에 실패한 언니 박언주가 실업팀인 사천시청으로 가면서 자매는 1년만에 생이별해야 했다.

그 사이 동생은 여자 프로농구 최고의 선수로 성장해 우리은행의 2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끌었고,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가 됐다. 그리고 한때 농구공을 손에서 놓으려 했던 언니는 동생과 가족의 설득에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지난 29일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둘은 평소와 다름없이 팀 훈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오전훈련은 매우 타이트하게 진행됐다. 개막 후 최다연승 신기록(16연승)을 세우며 '전승 우승' 얘기까지 나왔던 우리은행은 지난 26일 신한은행에 시즌 첫 패배를 당했다. 경기 후 이틀간 외박을 다녀온 선수들은 신한은행전에서 잘 안 됐던 패턴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훈련을 진행했다.

오전 훈련이 12시가 넘어서 종료됐고, 비로소 자매와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비시즌 강훈련을 진행하는 팀답게 자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에 임했다.

▶2년간의 이별, 더욱 애틋해진 자매

헤어져 있던 2년간의 시간. 둘은 어떤 생각으로 서로를 바라봤을까. 동생 박혜진은 "솔직히 처음 언니가 나갔을 땐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내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변화해야 언니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했다"고 털어놨다. 언니 대신 팀에 남은 박혜진은 언니 몫까지 해내겠다는 의지 하나로 위성우 감독의 강훈련을 버텨냈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박언주는 "내가 더 많이 미안했다. 큰 짐을 동생에게 짊어지게 하고, 나만 나와있는 것 같았다. 사실 농구를 그만두려고 했다. 공부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과 가족이 아직 젊지 않냐고, 한 번 도전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더라. 지난 2년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이지만,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언니와 동생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느꼈다. 팀에 남은 동생도, 팀을 떠난 언니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그런 와중에 박혜진은 휴가 때 실업팀에서 뛰는 언니의 경기를 직접 지켜보게 됐다. 그리고 '언니가 꼭 프로로 왔으면' 하는 마음을 먹었다. 실업에서 뛰기엔 언니의 실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생은 가족과 함께 언니를 설득했다. 마음을 돌린 박언주도 이를 악물었다. 사천시청과의 계약기간이 끝난 뒤, 4개월 동안 개인 훈련에 매달렸다. 불어난 체중을 감량하기 위해 크로스핏을 하며 완전히 다른 팀이 된 우리은행의 강훈련을 대비했다.

▶박언주의 독기, 그리고 박혜진의 메시지

그렇게 박언주는 다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비시즌은 가장 큰 '고비'였다.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가 대표팀에 가있는 동안, 남은 우리은행 선수들은 박성배 코치와 맹훈련을 진행했다. 박언주는 당시를 떠올리며 "혼자 몇 번을 울었다. 그래도 박 코치님이 정말 많이 신경 써주셨다. 야간에는 한 시간 정도 따로 연습하기도 했다. 잘 버텨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동생의 말에 따르면, 언니는 원래부터 '독기'가 있었다. 복귀를 두고 큰 걱정을 안 했던 이유다. 박혜진은 "언니가 독해서 학창 시절부터 훈련량이 많았다. 7월에 만났을 때 짧은 시간에 많이 변해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잘 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자매가 팀에서 처음 재회한 건 지난 7월 여수 전지훈련 때였다. 박혜진의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 뒤늦게 만나게 됐다. 박혜진은 "가장 힘든 시기에 언니와 만났다. 서로 힘이 돼주지 못해 미안했다. 언니는 훈련을 따라가는 게 급했고, 난 대표팀을 갔다 와서 체력이 떨어진 상태였다"고 말했다. 박언주 역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감독님, 코치님께서 2년 공백기로 인해 탈이 나지 않도록 배려해주셔서 괜찮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훈련 속에 서로 대화도 많이 하지 못했다. 그래도 눈빛만 봐도 통하는 자매였다. 박언주는 "동생의 존재가 보이지 않게 큰 힘이 됐다. 서로 힘든 걸 앞에서 보고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혜진이가 자기 전에 모바일메신저로 '힘내라'는 말을 보내주곤 했다"고 했다.

힘내라는 말을 직접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박혜진은 "다른 얘긴 얼굴 보고 할텐데, 힘내라는 말은 언니를 보면 민망해져서 못 하겠더라"며 웃었다. 박언주는 "지금은 내가 혜진이 말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다. 그래도 동생이 언니에게 먼저 말하기 힘들 것"이라며 동생을 다독였다.

▶초등학교부터 프로팀까지, 자매가 함께 뛴다는 의미

두 살 터울의 자매는 부산 대신초등학교에서 함께 농구를 시작했다. 이후 동주여중과 삼천포여고까지, 자매는 같은 길을 걸었다. 학창시절 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박언주는 "사실 같이 코트에서 뛰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내가 3학년일 때 혜진이는 1학년이었다. 학창 시절엔 동생이 날 무서워했을 것"이라며 "내가 주장인데, 다른 선수들에게 말이 나올 수 있었다. 자매가 같이 뛰는데, 다른 선수들이 동생만 챙긴다고 얘기할까봐 일부러 엄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박혜진도 맞장구를 쳤다. 그는 "그땐 언니가 무섭고 싫기도 했다. 어릴 때는 언니 마음을 이해 못하고, '왜 나한테만 그러나'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젠 누구보다 애틋한 자매다. 2년간 떨어져 있으면서 그 소중함을 느꼈다. 이제 우리은행의 통합 3연패를 향해 두 손을 맞잡았다. 박혜진은 "언니가 팀에 오기 전에 4개월 동안 혼자 운동할 때부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잘 이겨내서 지금 이렇게 뛸 수 있는 것 같다. 언니의 마음가짐이나, 준비 과정이 절실했기에 가능했다"며 기쁜 마음을 표현했다.

박언주는 "아직 난 한참 부족하다. 내가 나가기 전에 우리 팀은 꼴찌였다. 하지만 지금은 우승팀이다. 후배들보다 내가 떨어진다. 그래도 다행인 건 비시즌 때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감독님께서 기회를 주셨다"고 했다.

코트에서 함께 뛰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박언주는 백업슈터로 출전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팀이 치른 17경기 모두 나와 평균 12분 6초를 뛰면서 3.1득점 1.1리바운드를 기록중이다. 자매가 함께 땀 흘리며 뛰는 기분은 어떨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을까.

박혜진은 "경기 땐 정신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내가 벤치에 나가 있을 때 언니가 뛰는 모습을 보면, 마냥 좋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1월 14일 하나외환전이었다. 언니가 3점슛 6개를 성공시켰는데, 나도 모르게 너무 좋아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박언주는 "경기 때는 언니, 동생 이런 건 신경도 못 쓴다. 난 아직 기복이 심한데, 잘 못하고 다음 경기에 좋은 플레이가 나왔을 때 혜진이가 누구보다 좋아해준다. 지금은 하루하루가 특별한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시즌 전 연습경기 때 처음 동생 패스를 받아 득점에 성공했을 때였다"며 미소지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