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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장르의 원류를 찾아서(2)-우울증 치료제로 사용된 R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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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RPG 시대의 개막 '울티마'와 '위저드리'

1부에서 '로그'의 등장 이후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차츰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텍스트 어드벤처, 로그라이크, MUD(Multi-User Dungeon, 텍스트로 즐기던 초창기의 온라인 게임) 등으로 혼란스럽게 나뉘어 있던 장르가 서서히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황금기를 연 두 게임이 등장한다.



1979년, 당시 컴퓨터상점에서 일하던 리처드 개리엇은 재미 삼아 롤플레잉 게임인 '아칼라베스'(Akalabeth)를 제작한다. 우연히 판매하게 된 '아칼라베스'는 생각 외로 잘 팔렸고, 리처드 개리엇은 이에 큰 자신감을 얻었다. 이어 그는 1981년, 애플2로 '울티마1'(Ultima I: The First Age of Darkness)를 내놓으며 본격적인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시대를 열었다.

'울티마1'은 아직 '던전 앤 드래곤'(과 '반지의 제왕')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임이었다. 여전히 '엘프'와 '드워프'가 등장했고, SF와 판타지가 기묘하게 뒤섞여 있는 배경(우주선도 나온다!)이라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티마1'은 큰 주목을 받았다. '로그'에서 아스키 문자로 구현 된 롤플레잉은 이제 좀 더 발전된 모습의 그래픽으로 진화해 등장했다. 배경은 난잡하지만 '악의 마법사와 대결한다'는 알기 쉬운 스토리도 호평을 받았다.

한편 '울티마1'과 비슷한 시기에 전혀 다른 컨셉의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이 등장했다. '던전 앤 드래곤'에 등장하는 던전 탐험을 '로그'보다 더 정교하게 컴퓨터로 옮겨놓은 컨셉의 게임이었다. 바로 서테크(Sir-Tech)사가 제작한 '위저드리' 시리즈의 탄생이었다. 1981년 첫 등장한 '위저드리'(Wizardry: Proving Grounds of the Mad Overlord)는 1인칭 시점에서 위험한 괴물로 가득 찬 던전을 탐험하고 임무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다.

앞서 설명한 '울티마'는 악한 마법사와의 대결이라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구성된 게임이었다면, '위저드리'는 던전 탐험에 좀 더 무게를 둔 형태였다. 1인칭 시점으로 구현된 던전 탐험은 그 당시에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전투와 탐험을 통해 장비를 얻고 더 강한 던전에 도전한다는 컨셉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만큼 중독성이 있었다. 레벨 업 마다 랜덤하게 능력치가 변화한다는 점도 독특했다.

우울증 치료제로 사용된 롤플레잉

던전 탐험과 전투가 중심인 게임이라 그런지 '위저드리'의 난이도는 자비심 없기로 악명이 높았다. '위저드리1'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로도 파티가 전멸하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던전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저장도 할 수 없는데다가, 한 번 파티가 전멸하면 무조건 새 캐릭터로 다시 게임을 시작해야 했다. 새 캐릭터가 던전에서 앞서 '죽은' 캐릭터의 시체를 찾아 장비를 회수할 수는 있었지만 다시 키워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는 '로그'와 상당히 유사한 점이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위저드리'의 이런 중독성을 아동 우울증 치료에 이용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는 점이다. 뉴욕의 한 심리치료사는 "심각한 우울증과 자살 성향을 보이던 아동을 (비록 제작사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위저드리의 중독성(?)을 통해 치유할 수 있었음"을 알리는 편지를 제작사에 보내기도 했다.

이렇듯 1980년대 초반 두 선구자인 '울티마'와 '위저드리'의 등장과 함께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본격적인 전성시대를 맞았다. 이전까지 '롤플레잉 게임'하면 대부분 '던전 앤 드래곤'을 위시한 TRPG였지만,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이 빠르게 대중화 되면서 그냥 '롤플레잉 게임'하면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을 뜻하게 되었다. '울티마' 그리고 '위저드리'와 함께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궤도에 오른 것이다.

일본 RPG의 시작은 성인게임

한편 1980년대 초의 일본은 (미국도 그랬지만) 온갖 종류의 PC와 콘솔 게임기가 난립하고 있었고 거기에 맞춰 온갖 종류의 게임이 쏟아져 나오는 말 그대로의 전국시대였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초창기의 롤플레잉 게임은 잡다한 형식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임회사인 에닉스, 스퀘어, 팔콤, 코에이 모두 이 시기에 온갖 종류의 롤플레잉 게임을 실험했던 역사가 있다.

예를 들어 코에이가 1982년 내놓은 '드래곤&프린세스'(ドラゴン&プリンセス)는 어드벤처가 약간 변형된 형태였고, 같은 해 코에이가 내놓은 '단지처의 유혹'(團地妻の誘惑)은 일본 최초의 성인 롤플레잉 게임(!)이었다. 또, 스미이 코지라는 개인 개발자가 ASCII 소프트웨어 공모전을 통해 내놓은 롤플레잉 게임인 보코스카 워즈(ボコスカウォ?ズ, 1983)는 전략 롤플레잉 게임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이런 난장판 속에서 앞서 소개했던 '위저드리'와 '울티마'가 일본에 수입되었고 이는 1980년대 중반 소위 말하는 '일본식 RPG' 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울티마'의 2D 그래픽 및 캐릭터 이동 방식과, '위저드리'의 중독성 있는 전투는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위저드리' 시리즈는 완전 일본어화는 물론 일본에 맞게 개량되어 출시될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일본 게임 문화 자체에서 큰 역할을 할 정도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1984년 팔콤이 내놓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드래곤 슬레이어'(Dragon Slayer)는 일본 게임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였다. '드래곤 슬레이어'는 일본 게임 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장르에 게이머와 게임 회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같은 해 T&E 소프트에서 나온 액션 롤플레잉 게임인 '하이드라이드'(ハイドライド) 역시 일본에서 롤플레잉 게임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주었다.

1986년이 되면 게임 역사에 영원히 남을 롤플레잉 '드래곤 퀘스트'가 등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식 RPG'의 본격적인 등장이다. 에닉스에 소속되어 있던 게임 개발자인 호리이 유지가 당시 '드래곤볼'을 연재하고 있던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의 도움을 받아 내놓은 '드래곤 퀘스트'는 등장과 함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일본에서 인기 있던 '위저드리'가 앞서 설명했듯 자비심 없는 난이도와 양키센스(?)로 유명했던 반면, '드래곤 퀘스트'는 부담 없는 그래픽과 스토리 그리고 적당한 난이도로 이전까지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지 않던 계층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위저드리'와 '울티마' 등 당대 인기 있던 게임들을 잘 연구하고 간편한 시스템을 짠 것도 성공의 요인이었다.

에닉스가 '드래곤 퀘스트'를 200만장 넘게 팔며 흥행에 성공하자, 다른 개발사들은 롤플레잉 게임에 더욱 열을 올리게 되었다. 이듬해인 1987년 스퀘어는 '파이널 판타지'를 내놓는다. '드래곤 퀘스트'를 철저히 분석하고 다른 방향의 롤플레잉 게임을 내놓자는 목표 아래 나온 '파이널 판타지'는 처음에는 '드래곤 퀘스트'의 아류작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드래곤 퀘스트'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차츰 일본 롤플레잉 게임의 또 다른 선두주자로 자리잡는다.

이런 식으로 1980년대 중반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가 등장했고, 일본의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은 북미(그리고 유럽)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 내에서 주로 인기를 얻던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 붐을 타고 북미로 건너가 거기에서도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리고 '서양식 RPG'팬과 '일본식 RPG'팬의 미묘한 시각차도 여기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김경래 게임어바웃 기자 gabriel@gameabou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