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열린 KBS 연예대상 시상식. 마지막 대상에 유재석의 이름이 호명되자 시상식장은 환호로 가득찼다. 충분히 예상됐던 장면이었음에도 동료 선후배들은 누구보다 기뻐하며 뜨거운 축하를 건넸다. KBS에서 무려 9년만에 품에 안은 트로피. 꽃다발 더미에 파묻힌 유재석도 눈물을 글썽였다.
유재석은 해마다 대상 후보 0순위로 거론되고 있지만, KBS에서는 유독 인연이 닿지 않았다. 2005년에 수상한 이후로는 동료들에게 영광을 넘겼다. 연말 시상식의 특성상 그 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거나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대상을 받았다. 2010년 '남자의 자격'을 이끈 공로로 이경규가 수상했고, 2011년엔 전성기의 '1박2일' 팀이 단체 수상했다. 2012년엔 '안녕하세요'와 '불후의 명곡' 두 편의 프로그램을 KBS의 간판 예능으로 만든 신동엽이, 2013년에는 '개그콘서트'의 맏형 김준호가 대상을 받았다.
이러한 관행에 비춰볼 때 올해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1박2일' 팀에서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올해 유재석의 프로그램들은 KBS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도, 큰 화제를 모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재석의 수상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아가 너무 늦게 상을 받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유재석이 개별 프로그램을 넘어서 KBS 예능 전체에 큰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14년차 '해피투게더'는 '전국노래자랑'에 이어 두번째로 오래된 장수 프로그램이다. 유재석은 2003년 11월부터 12년째 '해피투게더'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전체적인 시청률 저하현상 속에 6~7% 수준까지 떨어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 시간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들이 맥을 못 출 만큼 최강자로 군림했다. '해피투게더'가 예전만 못하다고는 해도 KBS 예능의 명성을 이어온 효자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올 한 해 그렇게 '핫'하지 않은 '해피투게더'가 서태지를 비롯한 특급 게스트를 스튜디오로 데려올 수 있었던 것도 유재석의 힘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프로그램 뒤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낸 유재석에게 대상이 주어진 것은 지난 12년간 KBS 예능을 든든하게 뒷받침해온 공로에 대한 보답도 있었을 것이다.
올해 유재석은 '나는 남자다'로 KBS 예능의 혁신을 주도하기도 했다. 총 20부작 시즌제로 제작된 '나는 남자다'는 초반의 우려를 딛고 한 시즌을 무사히 완주했다. 올해 KBS가 선보인 신규 예능 중 유일하게 제 몫을 해낸 프로그램이다. KBS가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시도해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유재석이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맡아줬기에 가능했다.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박미선의 지지연설은 유재석의 대상 수상 이유를 모두 담고 있었다. 박미선은 "후배들한테 주로 해주는 말이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해피투게더' 같은 경우 14년 간 목요일 밤을 지켜왔는데 유재석은 초창기부터 10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많은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요즘 같은 때 이렇게 장수할 수 있다는 건 MC 유재석의 능력이다. 유재석은 모두가 인정하는 국민MC다. 그 진가를 어디서 느끼는가 하면 긴장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배려하면서 재밌는 부분들을 끄집어내준다"고 말해 시청자를 뭉클하게 했다.
유재석은 수상 소감에서도 배려가 넘쳤다. 그는 "제가 상을 받는 게 맞는 일인가 싶다. 죄송하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시간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는데 길게 얘기하는 것도 민폐인 것 같다"고 했다. 또한 "프로그램 시청률 저조하고, 관심 받지 못해 폐지되는 것은 가슴 아프다. 지금까지 함께 해준 '해피투게더'의 봉선이, 경환이 고맙다. '나는 남자다' 함께 해 준 동민 씨, 임원희, 권오중, 허경환 고맙다. 세호, 신영에게도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덧붙이며 동료들을 챙겼다.
유재석은 특별히 "동기들이 보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1991년 제1회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해 무명 시절을 KBS에서 보냈고 KBS '서세원쇼'의 토크박스 코너를 통해 비로소 무명 딱지를 뗐다. 친정에서 받은 두 번째 대상 트로피 속에서 옛 동기들의 얼굴을 발견할 만큼 유재석 자신에게도 뭉클한 울림이 있는 순간이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대상 수상자. 2014년은 유재석의 해였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