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같은 일주일이 지나갔다. 15일부터 21일까지 슈틸리케호의 제주 전지훈련을 마쳤다. 축구인생에서 태극마크를 단 한 번도 달아본 적이 없던 이정협(23·상주)에게 대표팀 제주 전지훈련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22일,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이 2015년 호주아시안컵에 출전할 23인의 최종엔트리에서 이정협을 깜짝 발탁했다. 12월 초까지, 축구팬들에게 생소했던 '무명' 이정협은 순식간에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돼 아시안컵에 출전하게 됐다.
23일 경북 문경의 국군체육부대 복귀를 앞두고 서울 지인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이정협은 어안이 벙벙했다. "제주도 전지훈련을 마치고 이제 홀가분하게 일상생활로 돌아왔는데. 많이 얼떨떨하다." 최종엔트리 선발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연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청소년대표팀 당시 두 차례 소집 훈련만 참가한 게 전부였다. 무명인 내가 갑자기 아시안컵에 출전하게 됐다. 완전 신데렐라가 됐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어 그는 "감독님께서 젼혀 언급이 없으셨다. 전지훈련 기간동안 개인적으로 말씀을 거신적도 없었다. 훈련만 지켜보셨다"면서 "일주일 동안 좋은 선배들이랑 친구들과 훈련을 즐기면서 많이 배웠는데 아무래도 감독님께서 제공권, 활동량 등 최전방 공격수로의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성실함과 꾸준함이 돋보이는 이정협은 제주 전지훈련 마지막날 진행된 연습경기에서 골을 터트리며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프로 데뷔 두 시즌만에 이뤄낸 반전이다. 2013년 부산에 입단한 이정협은 첫 시즌에 2골을 넣는데 그쳤다. 팀내 입지가 불안하자 군복무라도 빨리 해결할 생각으로 2014년 상주에 입대했다. 그는 축구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지난 2월 이정기에서 이정협으로 개명했다. 올시즌 4골을 넣으며 성장했지만 그의 입지는 여전히 좁았다. 선발 출전이 단 두 경기에 불과한 백업 멤버였다. 반면 슈틸리케 감독이 짧은 출전 시간에도 그의 능력을 눈여겨봤다. FA컵 4강전(10월 22일)에서 처음 이정협의 플레이를 지켜본 슈틸리케 감독은 신태용 코치를 상주로 파견해 이정협의 플레이를 집중 점검했다. 결국 최전방 공격수를 찾던 슈틸리케 감독은 1m86의 장신이면서 활동량이 풍부한 이정협을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전격 발탁했다.
꿈이 이뤄졌다. 불과 5개월 전 '월드컵 스타' 이근호(29·엘 자이시)와 국군체육부대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나눴던 대화가 현실이 됐다. 이정협은 "근호형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대표팀 생활을 물어보곤 했다. 내가 부러워하니깐, 근호형이 '열심히 하면 함께 대표팀에서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좋은 말을 많이 해줬었다"면서 "롤모델이 근호형이었다. 근호형이 월드컵에서 득점을 하고 거수경례를 한 것 처럼 나도 꼭 골을 넣고 거수경레를 하고 싶다. 함께 뛰게 될 줄 몰랐다. 나에게 1분이라도 주어진다면 모든 걸 쏟아내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이정협은 슈틸리케호에서 타깃형 공격수의 임무를 소화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강점을 '제공권과 공간 침투'로 꼽았다. 이정협을 지켜봐온 스승들도 그의 움직임을 높이 평가했다. 박항서 상주 감독은 "정협이는 활동 반경이 넓고 움직임이 많은 공격수다. 감독마다 보는 시선이 다르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 볼키핑이 부족해 타깃형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문전 앞 집중력은 뛰어나다"고 했다. 동래고 시절부터 그를 지켜본 윤성효 부산 감독은 "상무에서 프로의 맛을 알았다. 경험이 생기다보니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 세기가 부족하고 아직 설익었지만 많이 뛰고 움직임이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