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제주 서귀포시 클럽하우스 인재관 강당에서 열린 조성환 제주 신임 감독의 취임식에 특별한 손님이 함께 했다. 박경훈 전 제주 감독이었다. 박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계약기간이 1년 남았지만 상호 합의 하에 아름다운 이별을 선언했다. 박 감독의 등장은 말그대로 깜짝 방문이었다. 신변 정리 차 제주로 돌아온 박 감독은 지난 시즌 코칭스태프로 함께 했던 조 감독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취임식장을 찾았다. 구단직원들도 예상하지 못한 방문이었다. 박 감독은 "사실 점심약속이 있어서 원래는 올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후배를 위해 약속을 미루고 왔다"고 했다. 박 감독은 조 감독에게 머플러를 걸어주며 후배의 앞길에 힘을 불어줬다. 그는 "조 감독이 내 밑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코치가 감독이 되서 전 감독으로 기쁘다. 항상 응원하고 잘될 수 있게끔 기도할 것"이라고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5시19분 인천 유나이티드로부터 메일 한통이 날라왔다. '인천, 김봉길 감독 해임.' 갑작스러운 해임발표가 있기 전, 김봉길 감독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김 감독은 당황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김 감독은 "오후 5시쯤 구단 사무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광석 대표이사와 구단주인 유정복 인천시장이 최종적으로 해임하기로 했다'고 하더라. 당황스럽다"고 했다. 김 감독은 "대표이사가 얼마전 해임건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하지만 유 시장과 일주일전 만나는 자리에서 '해임에 대해 얘기한 적도 없다. 유임시킬테니 열심히 하라'고 들었다. 몇일 전에는 운영팀장을 만나 다음시즌 운영 방안에 대해 이야기까지 나눴다. 이러한 상황에서 덜컥 전화로 해임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19일 펼쳐진 제주와 인천의 대조적인 행보다. 제주는 감독교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러서고 새로운 사람이 올 때까지 '정도'를 걸었다. 박 감독은 조 감독을 축복했고, 조 감독과 구단도 박 감독에게 예로 답했다. 박 감독과 조 감독은 다음시즌 제주월드컵경기장에 2만명의 관중이 들어서면 함께 오렌지색 염색을 하겠다고 했다. 반면 인천은 전화 한통으로 자리를 없애버렸다. 예의와 절차는 없었다. 2008년 인천 코치에서 시작해 2010년과 2012년 2차례의 감독 대행을 거쳐 2012년 시즌 중 정식 감독으로 발탁돼 지금까지 선수단을 지휘하며 7년 동안 인천을 위해 헌신한 감독에게 내린 조치치고는 매너가 없는 행동이었다. 금요일 오후 일방적인 통보로 김 감독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김 감독 입장에서는 당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인천은 김 감독에게 여러차례 해임을 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결정을 내린 순간, 구단과 김 감독은 함께 있지 않았다. 인천의 방식은 분명 세련되지 않았다.
인천이 밝힌 김 감독 해임의 이유는 성적 부진과 외국인선수 영입 실패다. '파리목숨'이라 불리는 감독이다. 성적에 따라 언제든 옷을 벗을 수 있는게 감독이다. 석연찮은 이유라고 하더라도 감독은 구단의 결정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아쉬운 것은 전화 한통으로 인연을 끊었다는 점이다. 축구판도 어차피 사람이 사는 곳이다. 잘못 꿴 첫 단추지만 마무리라도 잘 지어야 한다. 인천은 김 감독과 아직 잔여연봉 등을 두고 마무리 협상을 하지 못했다. 아니, 협상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아직 갖지 못했다. 지금이라도 투명하고 깔끔하게 김 감독을 보내줘야 한다. 그게 7년 동안 인천에 헌신한 감독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예우다.
한편, 인천은 후임감독으로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의 이임생 전 싱가포르 홈유나이티드 감독을 선임했다. 이 신임 감독은 1월 전지훈련부터 본격적인 감독업무를 시작할 계획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