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체육계 인사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체육국장(체육정책관)을 "체육 대통령"이라고 했다. 장관이 있고, 체육을 관할하는 제2차관이 있지만 체육국장은 실무를 총괄한다. 체육행정의 그림을 그리고, 체육정책을 끌어가는 직책이다. 문체부 산하에는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생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체육인재육성재단 등 한국체육을 움직이는 단체가 실핏줄처럼 뿌리를 내리고 있다.
문체부 체육국장은 옛 직제로 보면 2급 이사관이나 3급 부이사관이 맡는다. 대다수 체육국장이 행정고시 출신의 엘리트 관료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 체육국장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최근 '정윤회 문건' 보도로 촉발된 '비선 실세' 의혹이 불거지더니, 엉뚱하게 문체부에 불똥이 튀었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문체부 국장, 과장 교체를 직접 지시했다'고 밝히면서 정치권은 물론, 문체부, 체육계까지 흔들렸다.
최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희극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김 종 2차관이 부임 후 전횡을 휘둘렀다는 질책을 받고 여야 공방이 벌어진 가운데, 우상일 체육국장이 김 차관에게 '여야 대결로 몰고가야'라는 글이 담긴 쪽지를 건넨 사실이 공개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여야 의원들은 초유의 일이라며 크게 흥분했고, 회의장은 발칵 뒤집어졌다.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우 국장을 인사조치하겠다고 했다. 문체부측은 지난 8일 우 국장의 메모가 공무원의 품위를 훼손했다며 인사혁신처에 중징계를 요청했다. 문체부 관계자가 이런 식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경우는 없었다.
체육계 개혁, '비정상의 정상화'가 문체부의 핵심 정책과제로 떠오른 지난해 10월 이후 체육 관료들의 수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노태강 체육국장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자리를 내줬다. 대한승마협회 감사 결과를 보고한 이후인 지난해 9월 노 국장과 진재수 체육정책과장이 갑자기 경질됐다. 유 전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경질을 지시했다고 했던 바로 그 상황이다. 일부에서 박 대통령과 가까운 비선 실세라고 주장하는 정윤회씨의 승마선수 딸이 얽힌 사안이다. 체육국장 경질 배후에 정윤회씨가 있다고 얘기가 나왔다. 청와대에서는 노 국장의 인사조치가 체육계 비리 척결에 미온적이어서 취해진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노 국장의 후임인 박위진 체육국장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 2월에 우 국장으로 교체됐다. 불과 6개월새 체육국장 3명이 바뀌었다. 누가봐도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문체부 체육파트가 무능한 집단, 정부의 개혁 의지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집단이 돼버렸다. 현재 분위기를 보면 우 국장까지 교체될 수 있을 것 같다.
문체부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면, 관광체육레저정책실의 체육정책관이 '체육진흥 장·단기 종합계획 수립·추진, 국가대표선수 육성·지원 등을 통한 전문체육 진흥, 생활체육/레저스포츠/스포츠산업 진흥 및 관련 단체 육성·지원, 국제체육교류 진흥, 태권도의 진흥 및 세계화, 장애인의 체육환경 조성 및 지원체계 개선 등을 추진한다'고 돼 있다. 고질적인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나선 시점에서 크게 위축된 문체부 체육관련 부서가 과연 체육계 비리 척결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사실 최근 몇 년 간 체육의 위상이 크게 올라갔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기존 문화관광부에 '체육'이 추가돼 문화체육관광부가 됐다. 한동안 사라졌던 체육이 정부 부처명에 부활한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체육을 담당하는 2차관에 체육 관련 인사가 임명됐다. 박종길 전 차관은 사격 국가대표 출신에 태릉선수촌장을 지낸 체육인이다. 김 차관도 국내 스포츠산업학계를 대표하는 전문가다. 이전에 주로 관료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인사가 맡았던 직책이기에 체육인들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기대감도 컸다. 그런데 박 차관이 개인적인 문제로 낙마하고, 김 차관은 청와대 실세 비서진과의 유착설, 인사 전횡설에 휘말렸다. 최근 체육국이 관광체육레저정책실에 편입되며 스포츠 정책 및 역량 축소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불거졌다.
문체부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4년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체육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전방위적 노력'이라고 자찬했다. 김 차관은 "연내에 스포츠 4대악 센터, 합동수사반의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년간 문체부 체육정책 담당 고위직들은 정통 관료 출신, 스포츠 인사 출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너나할것없이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고, 비전을 선포하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책임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날 갑자기 사라졌다. 이후 체육 개혁 드라이브는 '진정성'보다 '코드 맞추기' '보여주기'에 급급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태권도 심판 비리를 언급하고, 정부가 척결 의지를 천명한 지 1년이 지난 시점, 대한민국 스포츠계는 얼마나 더 맑아졌는가. 스포츠 4대악은 얼마나 척결됐는가. 현장의 체육인들은 얼마나 더 행복해졌는가. 여러 모로 답답한 상황이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