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일 리베로가 아시아 최강의 자리를 놓고 싸운 적이 있었다.
홍명보(45)와 이하라 마사미(47)는 한-일 축구의 간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본업은 수비수지만, 때로는 공격에 나서 호쾌한 중거리포를 날리는 이들의 존재는 상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마크하진 않았지만, 후방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지휘하는 이들의 모습은 양국 팬들에게 언제나 뜨거운 관심사였다.
은퇴 뒤에는 다른 길을 걸었다. 홍명보는 LA갤럭시(미국)를 끝으로 현역생활을 마무리 짓고 스포츠행정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놔두지 않았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부름을 받아 코치 신분으로 지도자에 입문, 2006년 독일월드컵에 참가했다. 반면 2002년 우라와를 끝으로 은퇴한 이하라는 공영방송 NHK의 축구해설가, 라디오 패널, 일본축구협회(JFA) 대사, 대학 교수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S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2006년 일본 올림픽대표팀 코치에 취임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3년 뒤인 2009년 가시와에서 프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다카하시 신이치 감독이 경질되자 감독대행직을 맡았고, 지난해에도 넬시뉴 감독의 바통을 이어 받아 감독대행을 했다. 라이벌 홍명보가 2009년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을 시작으로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일궈낸 데 이어 A대표팀 감독까지 치고 올라간 것과는 비교되는 행보였다.
이하라도 마침내 사령탑 타이틀을 달았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15일 이하라가 J2(2부리그) 아비스파 후쿠오카 지휘봉을 잡는다고 전했다. 후쿠오카는 이하라 감독과의 계약기간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후쿠오카는 J-리그의 대표적인 약체팀이다. 1994년 준가맹팀으로 출발해 1996년 J-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5년 만인 2001년 리그 15위로 강등 철퇴를 맞은 뒤, 2006년과 2011년 각각 J1(1부리그)에 복귀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2부 생활을 했다. 올 시즌에도 J2 전체 22팀 중 16위에 그치면서 승격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화려한 현역 생활을 보낸 뒤 J1의 강호인 가시와에서 5년 간 코치 생활을 한 이하라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가시와 외에는 다른 팀에서 지도 경험을 쌓은 적이 없다는 게 약점이다. 후쿠오카의 전력이 가시와와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하라 감독의 성공 여부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다.
이하라 감독은 "후쿠오카에서 일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팀을 응원해주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이 선수, 지도자로 쌓아온 경험을 모두 전수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선수단 뿐만 아니라 구단 프런트, 팬과 함께 모두와 일체감을 갖고 용맹히 정진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