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터뷰다. 나는 이제 내 갈길을 가야 한다. 후임 노상래 감독이 더 좋은 팀을 만들기 위해 잘해줄 것으로 믿는다."
하석주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29일 오후 K-리그 클래식 최종전 인천과의 고별전을 마치고 마지막 기자회견에 나섰다. 마지막 휘슬이→ 울릴 때까지 치열했던 공방은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지난 2년반동안의 소회와, 선수들에 대한 감사, 절친 후배이자 파트너인 신임 노상래 감독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노 감독이 더 좋은 팀을 만들어 줄 것"이라며 웃었다. "나는 당분간은 프로팀을 맡기가 쉽지 않겠지만 아마추어팀에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팬 여러분이 실망하기 않게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년반 감독 재임기간중 가장 기뻤을 때를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전북을 이겼을 때"라고 했다. 지고는 못사는 승부사 하 감독에게 '전북 징크스'를 넘은 일은 프로 지도자로서 가장 행복한 일이었다. "삼세번 도전했고, 결국 리그 우승팀인 전북을 버저비터골로 3대2로 이겼던 그순간을 잊지 못한다.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비행기 세리머니를 했다. 나중에 리플레이 화면을 보고 창피했다"며 웃었다. "가장 아쉬웠던 경기는 6강 전쟁의 분수령이 됐던 경남전에서 비긴 일이다. 아쉽게 6강에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감독의 고별전을 앞두고 제자들은 감사와 아쉬움이 가득했다. 감독의 방문을 차례로 두드렸다. "스테보가 어제 방으로 찾아왔더라. 울 것같은 얼굴로 인사하더라고 했다. 이종호는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때 입었던 유니폼과 축구화에 사인을 해서 들고 왔다"고 했다. "유니폼에 편지를 썼더라. 어려울 때 오셔서 고생 많이 하시고, 부족한 저를 성장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써 있더라"고 했다. 가슴 뜨거운 메시지에 분위기가 뭉클해지자, '상남자' 하 감독은 씩씩한 농담을 던졌다. "유니폼에 편지를 써서 입을 수가 없잖아, 축구화는 신을 수 있는데…."
"젊은 선수들이 어려운 시기를 잘 버텨줬기 때문에 올시즌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지난 상주전에서도 베스트팀으로 선정됐다. 재밌는 경기 내용을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기분 좋다"며 웃었다. "두자릿수 이상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선수가 3명(스테보 이종호 안용우)이나 있고, 영플레이어, 득점왕 후보를 배출했다는 점에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상위 스플릿 빅클럽의 김승대 이재성과의 영플레이어상 경쟁에서 밀리는 모양새지만 애제자 안용우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거듭 강조했다. "영플레이어 후보가 하위팀에서 나오기는 사실 더 어렵다. 전북 같은 강팀들에 비해 도움을 주고 찬스를 만들 동료들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록면에서는 오히려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 선수들의 폭풍 성장도 뿌듯하다. "3년간 대표선수를 배출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이종호가 가장 큰 성장을 보여줬고 센터백 임종은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홍진기 전현철 심동운 등 좋은 자원들에게 기회를 더 많이 주지 못한 점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처음 전남을 맡았을 때는 원하는 축구보다 승점 1점이 간절한 상황이었다. 나는 치고 받으면서 하는 재밌는 축구를 원했다. 승점 3점을 위해 3번 비기는 것보다 1승2패가 낫다. 화끈하게 지더라도 잠그면서 1대0으로 이기는 축구는 하지 않았다. 즐겁게 축구하면서 지든 비기든 운동장에서 쓰러진다는 마음으로 뛰라고 주문했고, 그것이 통했다. 잘 따라준 선수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2년 전 젊은 선수들의 똘망똘망한 눈빛이 기억난다. 프로라기보다 대학선수들처럼,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기특했다. 이 선수들이 잘 성장시켜야한다는 부담이 컸다. 올시즌 고참을 보강하면서 이들과 잘 교감이 되면서 가장 원했던 6강은 아니지만, 7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하 감독은 인천전 직후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스테보와 따뜻한 포옹을 나눴고 이종호, 송창호, 안용우, 이승희 등 동고동락한 애제자들과는 손을 맞잡았다.
전남 서포터들은 하석주 감독과 선수들을 향한 따뜻한 플래카드를 들어올렸다. '하석주 감독님 수고하셨습니다' '나의 전남선수 여러분 1년동안 행복했습니다.' 전남 팬들은 올시즌 행복했다. 하석주가 지난 2년반 동안 바꿔놓은 광양의 작은 기적을 알아봤다.
노란색 플래카드를 향해 하 감독이 뚜벅뚜벅 걸어갔다. "하석주!"를 연호하는 서포터스를 향해 박수로 화답한 후 손을 잡으며 감사를 표했다. 선수들이 서포터들과 함께 올시즌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포터스들이 플래카드를 바꿔 들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습니다!' 6강전쟁 이후에도 재밌는 축구, 투혼의 축구를 포기하지 않았던 '진짜 프로' 하석주 사단에 대한 팬들의 인정이자 뜨거운 찬사였다. 광양=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