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위에 올려진 딸기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22일 K-리그 37라운드 상주상무전(3대1 승)에서 12-13호골을 한꺼번에 터뜨린 전남 '테보신' 스테보(32)는 유쾌했다. 자칫 밋밋할 뻔했던 2014년 K-리그 클래식 막판 득점왕 레이스에 제대로 불씨를 당겼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1경기를 남겨두고 이동국 산토스와 나란히 13골을 기록하게 돼 아주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사실 상주전 전까지 득점왕은 생각지도 않았다. 상주전에서 2골을 터뜨린 후 도전할 자격이 생겼다. 아주 기대된다. '케이크 위의 딸기'를 기다리는 기분이다. 내 축구 커리어에 '딸기'를 얹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다."
스테보는 득점왕 레이스에 집착하기보다 온전히 즐기고 있었다. "다들 득점왕 레이스에 대해 말하지만, 지금 내겐 득점왕보다 좋은 경기를 하는 것, 팀이 이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내게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산토스가 골을 넣는다면 진심으로 축하해줄 것이다. 이동국도, 산토스도 올시즌 좋은 활약을 펼쳤고, 누가 되든 축하받을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팀플레이어' 스테보는 팀의 헌신에 감사를 표했다. 상주전 2-1로 앞선 상황에서 이종호 레안드리뉴 전현철 안용우 등 동료들은 스테보를 향해 끊임없이 크로스를 올리고, 스루패스를 넣었다. 마지막 순간, 스테보의 13호골을 도운 건 룸메이트인 '광양루니' 이종호였다. '10골' 이종호가 '12골' 스테보의 특급도우미가 됐다. 후반 44분, 절친의 눈빛이 통했다. '살신성인' 킬패스를 스테보는 놓치지 않았다. 13호골을 쏘아올린 직후 뜨겁게 포효했다. 화끈한 상의탈의 세리머니로 기쁨을 만끽했다. 이종호는 "스테보가 득점왕이 되도록 마지막까지 돕고 싶다"고 했다. 스테보는 "(이)종호는 내 '브라더'다. 전남은 내 '패밀리'다. 동료들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한 선수가 뛴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한 팀이 돼서 뛴 부분에 감사한다"고 했다.
시즌 직전 인터뷰에서 스테보는 공격포인트 15개를 목표삼았다. 올시즌 34경기에서 13골 4도움을 기록했다. 2007년 K-리그 첫시즌 전북에서 15골 5도움 이후 개인 최다 기록이다. 올시즌 전남의 최전방에서 스테보의 파이팅은 빛났다. 이종호 안용우 등 어린 선수들과의 시너지를 이끌어냈다. "K-리그 빅클럽(전북 포항 수원)에도 있어봤지만, 빅클럽에서는 자신을 위해 뛴다. 작은 팀에서는 다르다. 가족처럼 똘똘 뭉쳐, '같이' 해야 한다. 따로 하면 진다"고 했다. "올시즌 목표를 초과달성했지만 행복하지 않다. 개인 목표는 이뤘지만 팀이 상위 스플릿에 진출했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다"고도 했다. "그래도 올시즌 우리는 정말 잘했다. 많은 팬들이 전남의 플레이에 열광했고, 거의 매경기 골을 넣었으며, 수비 축구를 하지 않았고, '진짜' 축구를 했다. 내려서지 않았다. 팬들을 위한 재밌는 축구를 했다"고 자평했다. 전남의 성장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일찌감치 리그 7위를 확정한 전남은 29일 리그 38라운드 최종전 인천과의 홈경기를 앞두고 있다. 전남은 2007년 3월 31일 이후 7년 넘게 인천을 이기지 못했다. 21번의 맞대결에서 15무6패다. 올시즌 3차례 맞대결에서도 2무1패를 기록했다. 징글징글한 징크스를 이어가고 있는 인천과의 올시즌 마지막 승부다. 지난 2년반동안 전남을 이끌어온 하석주 감독의 고별전이기도 하다.
상주전 첫골 직후 스테보는 전남 벤치를 향했다. 하 감독을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하 감독님 고별전에서 인천 징크스를 깨고, 스테보가 득점왕에 오르며, 승리한다면 좋겠다"는 '절친' 이종호의 말에 스테보는 "완전 공감"을 표했다. "나는 '득점왕'보다는 징크스를 깨고 팀이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지막 인천전은 오직 팀과 하 감독님을 위한 경기"라고 못박았다. "나를 전남에 데려와주고, 믿어주고, 기회를 주고, 지지해준 감독님을 위해 반드시 징크스를 깨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올시즌 박수창(제주)이 4골을 몰아친 제주전(2대6 패)을 제외하고 스테보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 전남은 지지 않았다. '전남 불패의 아이콘' 스테보가 '케이크 위의 딸기'를 맛볼 수 있을까 .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