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은메달, 단체전 금메달을 휩쓸었던 남자 에페 대표팀이 올시즌 첫 국제대회에서 금빛 스타트를 끊었다. 낯선 북유럽, 발트해 연안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펜싱 코리아'의 이름을 또 한번 빛냈다. 남자 에페 대표팀이 '세계랭킹 1위' 프랑스를 꺾고 시즌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진선(30·화성시청) 박경두(30·해남군청) 박상영(19·한체대) 송재호(24·익산시청)로 이뤄진 남자 에페 대표팀(세계랭킹 3위)이 16일 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펼쳐진 남자에페 월드컵 단체전 결승에서 '세계 최강' 프랑스를 45대40으로 물리치고, 1위에 올랐다.
초반 박빙의 승부가 이어졌다. 1-2라운드는 탐색전이었다. 1라운드 박경두(세계랭킹 9위)가 뤼스네(세계랭킹 10위)와 1-1로 비겼다. 2라운드 '맏형' 정진선(세계랭킹 11위)이 그뤼미에(세계랭킹 5위)에게 한차례 찔리며 1-2로 밀렸지만 3라운드 송재호(세계랭킹 57위)는 패기만만했다. '세계 1위' 로베이리 대신 출전한 '세계랭킹 28위' 제랑을 적극 공략했다. 5-5로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4라운드 박경두가 그뤼미에에게 5차례 찔리며 8-10으로 리드를 내줬지만, 6라운드 송재호의 파이팅이 이어졌다. 뤼스네를 7차례 찔러내며 15-15, 또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6라운드 '백전노장' 정진선이 나섰다. 체격, 실력, 경험, 자신감에서 한수 아래 제랑을 압도했다. 21-19, 2점 차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7라운드는 승부처였다. '대한민국 톱랭커' 세계랭킹 2위 박상영이 피스트에 들어섰다. 지난 7월 카잔세계선수권 단체전 결승 5라운드에서 그루미에에게 역전을 허용했던 박상영이 이를 악물었다. '프랑스 톱랭커' 그뤼미에를 상대로 '전매특허'인 반박자 빠른 공격으로 맞섰다. 에이스다웠다. 팽팽했던 승부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금메달의 일등공신이 됐다. 3분동안 9번을 연거푸 찔러내며, 30-24, 점수를 6점 차까지 벌렸다. 8라운드 박경두가 제랑과 팽팽한 접전을 펼쳤다.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59초를 남기고 무릎 부상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피스트에 드러누웠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투혼을 발휘했다. 40-34, 후배 박상영이 확보한 6점차를 지켜냈다.
마지막 9라운드, 5번만 찌르면 금메달이 확정되는 상황, '맏형' 정진선이 뤼스네와 마주했다. 마음 급한 뤼스네를 상대로 침착한 경기운영을 이어갔다. 2포인트를 연달아 찔러내며 42-36, 초반 기선을 제압했다. 절박한 뤼스네가 적극적인 공세로 덤벼들었다. 연거푸 3번을 찔리며 42-39, 3포인트 차까지 추격을 허용했다. 벤치의 후배들이 "형, 괜찮아요"라고 소리쳤다. 정진선이 집중력을 발휘했다. 잇달아 3포인트를 찔러낸 후, 마스크를 벗어던지며 환호했다. 45대40, 1분12초를 남기고 금메달을 확정했다. 투혼, 작전, 실력의 승리였다. 한달전 스위스 베른월드컵 단체전 동메달을 금메달로 바꿔놓았다. 지난 7월 카잔세계선수권 결승전에서의 39대45, 패배를 보란듯이 설욕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정진선, 카잔세계선수권 은메달리스트 박경두, 1995년생 톱랭커 박상영, '베테랑 에이스' 권영준(27·익산시청·세계랭킹 49위) 김상민(28·울산광역시청·세계랭킹 83위) '차세대 에이스' 이정함(23·세계랭킹 772위) 등이 어우러진 남자 에페 대표팀의 실력과 팀워크는 역대 최강이다. 송재호 역시 이날 프랑스 에이스들을 상대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다. '맏형' 정진선은 "인천아시안게임 끝난 후 다들 회복이 덜 된 상태에서 나선 대회에서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다. 리우올림픽까지 이 분위기, 이 기분을 유지하며 가고 싶다. 정말 기쁘다"라며 활짝 웃었다. 남자 에페 종목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것은 2011년 3월 프랑스 파리 A급 월드컵, 2012년 1월 이탈리아 레냐노 A급 월드컵에 이어 이번이 역대 3번째 쾌거다. '세계 최강' 남자 사브르에 이어 남자 에페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