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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륜 20년, 은륜에 꿈을 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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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에서 비선수 출신이 활약하는 예는 아주 드물다. 사실 거의 없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선수 아닌 이가 선수처럼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만큼 각고의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 사이클 경륜 무대에선 이런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경륜 출범 20년 누적 상금 1위가 바로 비선수 출신의 장보규(1기)이다. 그가 20년간 벌어들인 상금만 해도 20억~30억원에 이른다. 그랑프리 3연패, 47승의 대기록 보유자인 '경륜의 전설' 조호성과 이명현 같은 선수출신 지존들을 이겨본 이들도 정해권과 인치환 같은 비선수 출신들이다.

지난해 비선수 출신의 박병하(2013년 상금 2억1000만원, 랭킹 2위)는 그랑프리를 우승함으로써 비선수 출신들의 희망이 되기도 했다. 그랑프리 우승은 국가대표 출신들도 일생일대의 꿈으로 생각할 만큼 경륜선수들에겐 영예의 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경륜 시행 20년간 그랑프리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는 단 13명에 불과하다는 점은 그랑프리가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어떻게 벨로드롬에선 가능했을까.

이는 운명과도 같은 경륜 태동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경륜 원년인 1994년, 정식경기를 치르기엔 선수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축이 되어야할 아마 선수 출신들은 프로 사이클의 성공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 일정급여를 보장받는 안정적인 실업팀에 머물거나 현업에 충실하며 좀 더 지켜보겠다는 자세였다.

당시 일찍 은퇴를 한 선수출신 중 은행원과 회사원. 변호사실 사무장, 고등학교 코치 등 다양한 직업군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경륜 출범에 대한 관심은 높았으나 섣불리 나서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같은 해 공교롭게도 일본 히로시마에선 아시안 게임이 열렸고, 경륜 출범의 주축이 되어야할 사이클 국가대표 출신들조차 자연스레 원년 멤버에서 제외됐다.

개막전을 준비해야하는 경륜 관계자들이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고육지책으로 경륜측은 비선수 출신들을 영입하려는 아이디어를 짜게 된다. 당시로선 대단히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경륜 첫해에 그것도 경기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인을 팬들이 운집한 벨로드롬에 올린다는 계획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경륜측은 서둘러 인근 체육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학교 졸업 후 진로가 확실치 않았던 이들은 좋아하는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다는 말과 성적이 좋을 경우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당시엔 지금과 같은 정식 훈련원이 없던 시절이라 선수들은 미사리 조정 경기장에 임시 숙소를 마련, 개막을 4개월 앞둔 시점에 단체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처음 3개월은 단내 나는 체력 훈련에 주력했고, 마지막 한 달은 주행 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태권도와 유도, 씨름 등으로 다져진 선수들에게 평지와 다르게 경사진 벨로드롬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결국 경사진 코너를 제대로 주행 못하고, 앞 선수와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지 못한 채 넘어지기 일쑤였다. 다리와 엉덩이는 성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최초의 프로 사이클 선수가 되겠다는 자부심 하나로 이들은 고된 훈련을 묵묵히 소화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종 살아남은 선수는 졸업생 전체 113명. 이중 용인대 출신 27명을 비롯해 비선수는 총 51명이었다. 역사적인 대한민국 경륜 선수 1기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개막 첫해는 단 6주밖에 경륜이 치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선수 출신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환경이 뒷받침되면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서서히 그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총 6회 차가 채 안된 경주중 특선경주 그것도 결승에 비선수 출신이 진출, 3위를 기록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많게는 15년 이상 적게는 10년 경력의 선수 출신들에겐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비선수 출신들은 점점 자신감을 얻었고 벨로드롬 바깥으로 소문도 나기 시작했다. 결국 평일엔 택시 기사로 주말엔 동호회에서 활동하다 입문하는 이가 나타나는가 하면, 충무로 인쇄 골목에서 짐 자전거로 전단지를 나르다 군대 동기 및 후임병의 소개를 통해 입문한 이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영화 식객을 통해 잘 알려진 직업 정형사(도축한 육류를 부위별로 나누는 직업) 출신, 야구, 럭비, 스케이트 등의 분야에서 수년간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선수들까지 경륜으로 전향하기에 이른다.

탄탄한 초석을 바탕으로 시너지는 계속 확산됐다. 처음엔 무시했던 선수 출신들조차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던 것. 하지만 비선수 출신들의 활약은 선수출신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지금까지 20년간 선의의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륜 관계자는 "오늘날 경륜의 성장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비선수출신들의 땀과 눈물, 피나는 노력 등 수많은 숨겨진 스토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여기에 텃세나 편견을 버리고 비선수출신의 열정과 노력을 인정해준 선수출신들의 포용이 더해 경륜을 꿈의 무대로 만들었다"고 경륜 20년의 소회를 전했다.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프로 사이클 무대에선 선수출신이 아닌 비선수출신들이 땀과 피나는 노력으로 일궈낸 수많은 휴먼 스토리가 있다. 이들이 20년 프로 사이클 무대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