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의 제8대 사령탑은 예상대로 김기태 감독이었다. '체질 개선'이 절실한 KIA엔 김 감독만한 적임자도 없다.
김 감독은 지난 2012년 LG 트윈스 사령탑으로 1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던 LG, 김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로 활동하던 2009년 말, LG의 러브콜로 한국 무대로 복귀했다.
당시 LG는 김 감독에게 2군 감독을 맡겼다. 선수 시절부터 '보스'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나약했던 선수단을 단단히 잡아주길 기대했다. 2군 체질개선을 위한 적임자라고 판단한 것이다.
김 감독은 2군 감독과 수석코치를 거쳐 2011년 말 LG 감독에 선임됐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감독 선임. 4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이 LG라는 어려운 팀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김 감독의 한국 복귀, 그리고 1군 감독 선임이 주목받았던 건 단순히 그 팀이 LG여서가 아니었다. 현역 시절 후배들을 통솔하는 능력이 남달랐던 '형님 리더십'의 소유자였던 그가 LG라는 팀과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가 관심이었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오랜 시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LG의 이미지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도련님 야구', '모래알 조직력'이라는 온갖 좋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 붙었다. 게다가 LG는 수년간 '리빌딩'을 외쳤지만, 여전히 고참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시즌을 포기한 뒤 기용됐던 젊은 선수들은 이듬해 다시 1군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결국은 또다시 고참들의 팀으로 회귀했다.
김 감독으로선 이들 고참들과의 조화가 관건이었다. 실제로 전임 사령탑들 중 의도적인 리빌딩을 하려다 고참들과 충돌해 피해를 본 감독들도 있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선수단과 충돌하지 않았다. 명확한 원칙 아래 신구조화를 꾀했다. 실력이 있는 고참들에겐 출전기회를 보장해 주고, 선수단 내에서 영향력도 손대지 않았다. 반면 정해놓은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 엄중히 대처했다.
실제로 전임 사령탑 체제 아래서 강제로 출전기회를 뺏겼다고 생각한 일부 고참들에게는 동기부여가 됐다. 선배로서 체면을 세울 기회가 온 것이다. 김 감독은 그렇게 '형님 리더십'으로 불리는 자신만의 인화력을 바탕으로 선수단을 움직였다.
감독 부임 첫 해, 정규시즌 성적은 7위였지만 김 감독은 차근차근 선수단을 변화시켜갔다. 부임 직후, FA(자유계약선수) 대거 이적과 경기조작 파문 등 악재가 많았다. 봉중근이 블론세이브에 소화전을 내리치는 일만 없었어도 첫 해부터 성과를 냈을 수도 있다.
결국 LG는 지난해 11년만에 가을잔치에 초대됐다. 신구조화가 돋보였다. 김 감독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올시즌 초반 성적 부진으로 김 감독이 감독직을 내려놓았지만, 기초 체력이 생긴 LG는 4위로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까지 올랐다. 지난해보다 한층 단단해진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KIA라면 어떨까. 고향팀이지만 선수 시절 단 한 차례도 인연을 맺지 못했던 타이거즈. 리빌딩에 돌입해야 하는 팀 사정상 김 감독이 필요한 여건은 조성돼 있었다.
KIA에선 오히려 LG 시절보다 편하게 김 감독의 색깔을 덧입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LG 때와 달리, 고참들이 비중이 크지 않다. 특히 LG처럼 한 팀에서만 오래 머문 터줏대감들이 많지 않다. 오히려 여러 팀에서 모인 선수단을 하나로 뭉칠 힘이 필요하다.
지난 수년간 KIA는 후반기만 되면, 급격히 추락해왔다.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매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한 시즌을 치를 선수들의 체력과 정신력이 부족했다. '체질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다.
LG가 처음 요미우리 2군 코치였던 김기태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리고 40대 젊은 감독 김기태를 만들었을 때 원했던 상황이 또다시 연출됐다. 과연 KIA가 '김기태호'라는 깃발 아래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