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막강한 위력을 선보였던 투수는 바로 해태 타이거즈의 에이스이자 마무리였던 선동열이다. 1985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일본으로 떠나기 전 해인 1995년까지 11시즌 동안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5번의 '0점대 평균자책점' 시즌을 달성한 선동열은 역대 통산 평균자책점 1위(1.20), 승률(0.785) 1위, 완봉승 1위(29번)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의 임팩트는 엄청났다. "선동열이 불펜에 뜨면 그날 경기는 끝난 것"이라는 말이 당대의 선수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로 통했다. 그만큼 선동열은 위대한 투수였다. '레전드'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선수시절에 쌓은 '레전드'의 명예가 한 순간에 퇴색되고 말았다. '감독' 선동열은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팬들의 비난을 이겨내지 못했다. 특히나 처음에 자신에게 그토록 열광적인 애정과 지지를 보였던 고향 팬이 냉정히 돌아선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6일만에 '재신임-자진사퇴'의 사건을 겪으면서 '레전드 선동열'의 명예와 이미지는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국보 투수'가 깨진 셈이다.
그러나 이런 사태는 선동열 감독 개인 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에도 큰 손실이다. 레전드의 상실은 한국프로야구 역사의 유산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선 감독의 감독으로서의 역량과 투수에 대한 이론은 반드시 재평가받고 다시 현장에서 활용되어야 한다.
누구나 실패는 할 수 있다. 지금 프로야구 팬들이 가장 열광하는 김성근 한화 이글스 감독도 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많은 실패를 겪었다. 스스로 "난 12번이나 감독에서 잘린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현재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 선 감독 역시 분명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기회가 있다.
야구계에서도 '레전드'의 부활을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다. 분명 '선동열'의 이미지와 명예는 상당히 퇴색됐다. 이걸 재구축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이것만큼은 다른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 스스로 다시 쌓아올려야 한다.
일단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연계한 유소년 야구 꿈나무 개발 프로그램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프로야구의 정점에 올랐던 '선동열'이라는 레전드가 야구 꿈나무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는 식이다. 선 감독 본인에게는 물론 한국 야구 전체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일 수 있다.
중여한 점 두 가지. 시간은 충분하다. 선 감독은 올해 만 51세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이자, 잠시 쉬어가도 충분한 때다. 몇 년의 재투자는 감수할 만 하다. 두 번째, 기회도 있다. 프로야구는 이제 10구단 시대다. 10명의 감독이 필요하다. 선 감독이 차근차근 다시 처음부터 명예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해둔 다면, 언제든 현장에 돌아올 기회는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