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가 NC 다이노스를 꺾고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은 25일 잠실구장. 경기 후 공식 인터뷰장에 들어온 LG 양상문 감독은 꼭 하고 싶어 준비했다는 듯이 "김기태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라고 했다. 자신이 시즌 도중 팀 지휘봉을 잡기 전 선수들을 이끈 전임 감독. 꼴찌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팀을 넘겨준 감독에게 양 감독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모래알을 다진 초석, 그리고 플레이오프 경험
LG는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 전까지, 10년 동안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돈도 많이 쓰고, 선수들 면면도 화려한 팀. 시즌 초중반 성적은 항상 좋은 팀. 문제는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팀으로서의 힘이 발휘되지 못하자 매 시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고, 그런 결과가 이어지자 선수들은 위축됐다. '올해도 또 마찬가지겠지'라는 패배 의식이 선수들을 지배했다.
그 10년의 패배 의식을 바꾼 사람이 바로 김기태였다. 김 전 감독은 냉정히 봤을 때, 전술이나 경기 중의 지략 등에서는 다른 감독들에 비해 치밀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선수들이 스스로 뭉치고,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게끔 하는 동기부여와 개인이 아닌 팀이 우선이라는 정신을 선수들에게 심어주는 측면에서는 최고라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감독이든 모든 부문 최고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자신들만의 특화된 장점이 있다. 뛰어난 선수들이 많은 LG에는 기술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이 더욱 중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김 감독과 LG는 잘 맞는 팀이었다. 그렇게 LG는 10년의 한을 풀었다.
LG는 운명을 좌우했던 정규시즌 마지막 10경기, 그리고 부담스러웠던 준플레이오프 고비를 잘 넘었다. 양상문 감독 입장에서는 어려운 상황에서 똘똘 뭉쳐준 선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 배경에 김 전 감독이 자리하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양 감독은 "지난해 선수들이 플레이오프를 경험해본 것이 이번 포스트시즌 정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라고 얘기했다. 올시즌 창단 첫 가을야구를 경험한 NC 선수들과 직접 비교가 됐다.
김 전 감독이 다져놓은 초석에, 양 감독이 훌륭한 지휘력을 발휘해 기적을 만들어냈다. 올해 초 김 전 감독이 떠나기까지의 과정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양 감독은 김 전 감독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자신이 이뤄낸 업적에 많은 칭찬을 들어야 하는 양 감독이지만 야구 후배를 먼저 배려하는 미덕을 발휘했다. 야구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뛰어난 감독이 탄생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LG 해피엔딩에 흐뭇한 김기태, 새 팀 사령탑 가능성은?
아직 LG의 가을야구는 끝나지 않았지만, LG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다고 해서 욕을 할 팬은 1명도 없을 듯 하다. 그만큼 LG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시즌을 보낸 팀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여기까지의 기적도 충분히 팬들에게 감동을 줬다.
많은 사람들이 LG의 선전에 기뻐하고 있다. 그 중 가장 기쁜 사람이 바로 김 전 감독이다. 지난 4월, 팀을 위해 힘든 결단을 내렸고 다행히 신임 양 감독과 선수들이 똘똘 뭉쳐 지난해 가을야구를 한 LG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25일 4차전을 지켜본 김 전 감독은 "우리 선수들 너무 대단하다. 지난해 큰 경기 경험을 하더니 간도 많이 커진 것 같다. 양 감독님 이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힘"이라며 흐뭇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야인이 된 김 전 감독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될까. 프로야구는 25일 LG의 플레이오프 진출과 함께 많은 일들이 있었다. KIA 타이거즈 선동열 감독이 재계약 6일 만에 자진사퇴를 했고, 한화 이글스가 김성근 감독을 전격 선임했다.
이제 감독 자리가 공식인 팀은 KIA와 롯데 자이언츠.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 반해 선수단이 잘 뭉치지 못하는 팀으로 인식되고 있다. 롯데의 경우 공개적으로 구단 수뇌부가 "카리스마가 있는 감독을 찾고 있다"라고 할 정도다.
때문에 김 전 감독의 이름이 양팀 감독 후보군에 올랐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김 전 감독은 "지난해 가을야구까지의 여정, 그리고 올시즌 초 어려움을 겪으며 초보 감독으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얘기했다. 과연 김 전 감독이 자신의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잡을 수 있을까.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