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발생한 경기 성남 판교테크노밸리 환풍구 추락사고로 인해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이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날 사고는 걸그룹 포미닛의 축하공연 중 지하주차장 환풍구 덮개가 붕괴돼 관람객 27명이 20m 아래로 추락,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지난 5월 세월호 참사 이후 또 한 번 대형 인명사고가 터진 것.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축하공연을 하다가 학생 10명이 사망하고, 128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이번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에 대해 경찰, 소방방재청 등에서는 "본인이 안전에 대해 조심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최 측에서도 안전에 경각심을 갖고 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본인이 '안전요원'인지도 몰랐다?
이번 공연에서도 주최 측이 안전에 조금만 신경을 썼으면 막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 애초 안전요원이 없었다는 경찰의 잠정 수사결과가 나온 것.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9일 오전 언론 브리핑을 통해 "1차 참고인 조사만 받은 상황이어서 '사실'이 아닌 진술내용을 기준으로 발표한다"고 전제한 뒤 "축제 계획서에는 안전요원 4명을 배치하는 것으로 돼 있었지만 애초에 안전요원은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안전요원으로 등재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직원 4명도 자신이 안전요원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그동안 이데일리, 경기과학기술진흥원, 경기도, 성남시 등 행사 관계자와 야외광장 시설 관리자 등 20여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조사 결과 축제 현장에는 과기원 직원 16명이 기업 홍보활동을, 11명이 무대 주변관리 및 이벤트 행사진행을 맡고 있었고 행사 사회자 2명을 포함한 이데일리 측 11명이 공연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들은 안전관리 교육을 받지 않았고, 사전에 안전요원 배치 현황에 대해 모두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행사장 안전계획은 전날 사망한 오모 과장이 작성한 것"이라며 "행사 주관자가 아닌 과기원 소속 오 과장이 안전계획을 작성한 이유에 대해선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확한 사고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해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오전 행사 주관사인 이데일리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대상은 서울 회현동 이데일리와 이데일리TV, 이들로부터 행사장 관리를 하청받은 업체, 수원 이의동 경기과기원 본사와 성남 경기과기원 판교테크노밸리 지원본부 등이다. 또한 이데일리TV 총괄 본부장 등 행사 관계자, 경기과기원 직원의 신체를 포함한 자택·사무실·승용차 등도 포함됐다. 관련자 6명은 모두 참고인 신분이지만 출국금지 조치됐다.
아울러 경찰은 이날 오전까지 행사 관계자와 시설 관리자 등 모두 20여명을 소환, 조사를 벌였다.
소환된 참고인들은 행사 사업계획서상 주최자로 분류된 경기도와 성남시, 경기과학기술진흥원 관계자들과 주관자인 이데일리 관계자, 판교테크노밸리 유스페이스 시설 관리자, 건축 관계자 등이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구조물이 안전상 문제가 없게 건축이 됐는지, 안전사고를 예방할 주의의무를 위반한 사항은 없는지, 책임자 범위 등을 중점적으로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관람객의 하중을 이기지 못한 환풍구 덮개에 대해선 정말 감식을 통해 부실시공 여부를 가리고 있으며, 감식 결과는 다음 주 말쯤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잇따른 대형 인명사고…외신들도 "안전불감증이 주된 원인"
그동안 지하철, 버스터미널 등 사회 곳곳에 안전불감증이 퍼져 있는 가운데 공연장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중이 급격하게 모이거나 밀집해 있을 때 불의의 사고가 터지면 인명 손상이 커질 수밖에 없다. 멀게는 2005년 7월 경기도 성남의 한 여고 체육관에서 한 음악전문 케이블 방송 녹화 도중 연예인 MC몽을 보려고 관객들이 무대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10여명 부상당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경북 상주 시민운동장 출입구에서 MBC 가요콘서트를 보러 입장하던 관람객 11명이 압사당하고 무려 162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난 2월에는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에서 열린 부산외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축하공연 도중 천장이 붕괴돼 10명이 사망했고, 128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런 이유로 외신들도 이번 환풍구 사고에 대해 안전불감증 문제를 지적하며 집중조명하고 있다. 미국 CNN은 "올 들어 한국에서는 세월호 침몰과 고양 버스 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 잇단 참사로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며 "한국의 안전불감증이 이어진 인명사고의 주된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영국 BBC도 "많은 사람이 국가의 규제들이 급속한 경제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고는 안전기준에 대한 논쟁을 심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행사 주관사인 이데일리의 곽재선 회장은 19일 "구조적인 문제와 부주의로 인해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났다"며 "책임 있는 언론사로서, 행사 주관사로서 책임질 일 있으면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워낙 사고의 규모가 커 향후 배상금 등 문제로 유족 측과 큰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