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나 스크린에서 주로 활동하는 배우들이 대학로 무대에 도전할 때는 이유가 있다.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키워드는 비슷하다, 바로 새로운 도전, 카메라 앞이 아니라 관객 앞에서,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다.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에서 공연 중인 음악극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두결 한장)'에 출연 중인 배우 차수연. 꽤 늦은 시간, 인터뷰를 위해 공연장 앞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오늘 제 연기 어땠어요?"라며 두 눈을 반짝인다. 11년차 배우가 아니라 마치 갓 데뷔한 신인 같다.
모델 출신 답게 '주먹 만한' 얼굴과 하늘하늘한 몸매를 지닌 그녀에게 '두결 한장'은 지난해 '클로저' 이후 두번째 서는 연극 무대다.
"처음에는 대사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NG 내면 어떡하지, 걱정이 많았어요(웃음). 하지만 동료 배우들을 믿고 하라는 연출님의 말씀을 듣고 상대의 눈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객석은 눈에 띄지 않고 상대 배우만 보이는 거예요."
20대 후반부터 연극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무대가 자꾸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밀려드는 드라마 스케줄 때문에 출연은 언감생심. 그러다 2012년 하정우 성유리 정경호 등이 소속된 기획사 판타지오의 나병준 대표와 결혼했다. '아이를 갖게 되면 연극 무대는 아예 접어야 하나'란 걱정이 들면서 더이상 늦춰서는 안되겠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살짝 부담을 안고 시작한 첫 무대 '클로저'는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고, 무대 연착륙에 성공하자 슬슬 자신감이 생겼다.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두결 한장'이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항상 조용하고, 참하고, 도시적인 역할만 해왔어요. 그런데 '두결 한장'의 효주는 밝고 활달한 왈가닥이잖아요. 저의 평소 이미지를 깨기엔 딱 좋아서 자연스레 끌렸어요."
'두결 한장'은 성적 소수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그린 작품이다. 각각 연인이 따로 있는 게이 민수와 레즈비언 효진이 사회적 시선 때문에 위장결혼한 뒤 겪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묘사한다. 주제는 무겁지만 다루는 방식은 경쾌하다. 웃다보면 가슴이 찡해진다.
"소재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글쎄요, 다 같은 인간이잖아요. 또 어려서부터 모델 생활을 했는데 주변에 게이 성향의 동료들이 있었어요. 그들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어색하거나 낯선 점은 별로 없었어요."
레즈비언 변신보다는 오히려 처음 도전하는 왈가닥 연기가 어떻게 비쳐지는지 더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받고 있는데 남편인 나병준 대표가 가장 말 많은(?) 모니터요원이다. "대사 외울 때 상대역을 해주는데 배우처럼 되게 잘 해요(웃음). 이 작품도 두 번이나 보고 드라마 연기와 무대 연기의 차이에 대해 꼼꼼하게 조언해줬어요."
스무살 때 잡지 모델로 커리어를 시작한 차수연은 2004년 KBS 드라마 '알게 될거야'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뒤 '그들이 사는 세상'의 이연희, '내 사랑 나비부인'의 목수정 등을 통해 이름을 알려왔다. 10년이 지나면서 생긴 왠지 모를 공허함을 채우기위해 도전한 연극 무대는 그녀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리어왕'이나 '맥베스' 같은 고전극에 출연하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뮤지컬에도 나서고 싶구요." 잔 실수는 있지만 '당황하지 않고', 새롭게 '배우 차수연'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녀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