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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출발, 감독 이상민의 인상적 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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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프로농구의 성적 추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보인다.

객관적인 전력 자체가 6강 이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1~2팀이 꼭 무너진다. 주전들의 줄부상, 선수단의 사분오열 등이 주된 원인들이다.

뿐만 아니라 우승전력인 팀들이 6강에서 멈추는 경우도 많다.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성적을 거둔 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히 이유가 있다.

그 중심에는 사령탑의 무능함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무능함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 중 핵심은 상대에 따른 각 경기별 전술의 부재와 선수단 장악 실패가 있다.

국내에는 프로 뿐만 아니라 대학 지도자들 사이에서 매우 좋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한마디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프로농구판에서 명장으로 평가받는 유재학, 전창진 감독은 시즌 전 '엄살'이 있다. "4강이 쉽지 않다"든지, "딱 6강 전력"과 같은 말이다. 그런데 선수 구성을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대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즌 후 결과를 보면 항상 예상 이상의 호성적을 거둔다. 시즌 전 철저한 준비와 선수단의 완벽한 장악으로 인한 조직력의 힘이 객관적 전력의 약점을 메우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무너지는 팀과 맞물리면서 시즌 전 예상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그런 점에서 삼성의 지휘봉을 잡은 이상민 감독은 출발이 좋다. 전력 평준화가 심화된 올 시즌이다. 그 중 삼성의 객관적 전력은 가장 약한 편에 속한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리오 라이온스를 뽑았지만, 실제 기량은 예상보다 떨어진다. 게다가 2순위로 뽑은 키스 클랜턴은 탄탄한 골밑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즌 전 불의의 발목부상을 당했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준일이라는 대어급 센터를 낚았지만, 여전히 국내 선수의 기량은 다른 팀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

그러나 이 감독은 팀컬러를 명확히 하며 사령탑 교체로 인한 선수들의 혼란을 최소화했다. 확실한 스피드 농구와 강한 디펜스를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게다가 라이온스와 클랜턴의 투입 때 팀 패턴을 명확히 했다. 삼성은 개막전 이후 2연패했다. 하지만 경기내용은 나쁘지 않다. 올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리온스에게 72대79로 끝까지 접전을 펼쳤다.

SK전에서 후반 무너지며 78대93으로 패했지만, SK의 강함과 삼성의 약점이 맞아 떨어진 경기였다. 삼성은 활동폭이 좁은 이동준 김준일 센터 겸 파워포워드가 중심이다. 하지만 내외곽을 겸할 수 있는 포워드 요원은 거의 없다. 김명훈이 있지만 완전치 않다. SK는 주로 3-2 지역방어를 쓰는데, 그 부분을 파괴할 카드가 부족한 상태였다. 결국 후반에 무너졌지만, 지난 시즌보다 경기력은 훨씬 좋아진 모습. 즉, 시즌 전 준비의 힘이다.

15일 안양 KGC와의 경기 전 삼성의 라커룸에 비치된 보드판은 10개 정도의 세부적인 작전이 적혀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장면. 통상적으로 경기 전 보드판에는 2~3개의 주요한 작전만 명시된 경우가 많다. 이유는 두 가지다. 실제 지도자들이 그 정도만 준비했을 경우. 노련한 지도자의 경우에는 일부러 노출시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감독이 매 경기 많은 생각과 연구를 한다는 점이다.

실제 이상민 감독이 우여곡절 끝에 신고한 첫 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객관적인 전력은 KGC가 낫다. 하지만 삼성은 더욱 숙련된 팀 플레이로 승부처를 이겨냈다.

전반 19점 차의 리드를 했지만, 동점을 허용해 연장전에 돌입했다. 고비마다 삼성은 완벽한 패스게임으로 확률높은 내외곽 찬스를 만들어냈다.

이 감독의 취임 직후 유재학 감독은 "그 친구(연세대 코치 시절 이상민이 제자였기 때문에 편하게 호칭을 썼다)는 워낙 머리가 비상하다. 때문에 대부분 감독들의 특징적 전술을 변화, 발전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 있다"고 했다.

이 감독은 "기본적인 조직력의 부분은 당연히 가지고 가야 한다. 그리고 매 경기 상대팀에 따라 그 부분을 어떻게 쓰는 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흔히 '스타 플레이어는 좋은 지도자가 되기 힘들다'고 한다. 선수 시절 명성만 믿고 평범한 선수들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지도자로서 연구가 부족한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KCC 허 재 감독은 감독 첫 해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등 '빅3'에 의존한 농구를 했다. 갑작스럽게 맡은 사령탑에 대한 준비 기간이었다. 그는 드러내지 않지만, 그의 방에는 매 경기 상대에 따른 KCC의 전술분석서가 빼곡하다. 허 감도은 여기에 대해 "나도 노력을 많이 한다. 그렇지 않고는 (프로 지도자로 )버틸 수 없는 자리"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 감독 역시 첫 승을 신고한 직후 "주위에서는 '편하게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자리가 편하게 할 수 있는 자리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혼자 고민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프로 사령탑으로 이상민 감독은 여전히 부족하다. 지도자로서 이제 출발했다. 경험이 쌓여야 하고,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야 한다. 아직까지 평가를 섣불리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출발만큼은 강렬하다. 선수들에 대한 장악력과 세밀한 전술에 대한 준비와 고민이 그 증거다. 안양=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