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의 시즌 운명을 가를 수 있었던 5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전. 1승1패, 3연전 마지막 경기 위닝시리즈 달성, 실패 여부에 따라 4위 싸움 향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정말 중요한 경기, 5회 잘던지던 선발 류제국이 흔들리며 3실점 했다. 조상우, 한현희 등 훌륭한 불펜 투수를 보유한 넥센이기에 바로 추격하지 않으면 어려운 경기가 될 뻔 했다. 다행히, 타선이 5회말 타선의 집중력과 상대 실책에 힘입어 1사 2, 3루 찬스가 만들어졌다. 당장, 동점은 만들지 못하더라도 주자 2명이 모두 들어오면 경기 중후반 충분히 해볼만했다. 그런데 타석에는 8번 포수 최경철이 들어설 차례였다. 절체절명의 순간. 대타 카드가 예상됐다. 그런데 뜻밖의 선수가 그라운드로 걸어나왔다. 거포 유망주 최승준. 아무리 투수가 좌완 오재영이라지만 팀 4번타자 이병규(7번)가 대기하고 있었고, 외국인 타자 스나이더도 있었다. 우타자로는 채은성과 베테랑 임재철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올시즌 25타수 출전 기록이 전부인 선수, 그것도 선구안과 컨택트 능력에서는 검증이 되지 않은 타자를 투입하는 것은 한 마디로 모험이었다. 하지만 양상문 감독의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됐다. 최승준은 보란 듯이 2타점 우전 적시타를 때려냈다. 볼카운트 1B 상황서 거침없이 오재영의 공을 받아쳤다. 직선 타구가 상대 우익수 유한준 앞에 떨어졌는데, 힘은 정말 장사였다. 타구 질이 무시무시했다. 어마어마한 직선타에 우익수 유한준이 제대로 상황 대처를 하지 못했다. LG는 최승준의 한방에 힘입어 5회 동점을 만들고 6회 역전했다. 9회초 동점을 허용했지만, 9회말 5대4 끝내기 승을 만들었다. 최승준의 대타 작전 성공 없이는 완성되기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최승준에게는 정말 중요한 경기였다. 단순히 귀중한 타점을 기록해서가 아니다. 진정한 1군 선수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점이 중요하다. LG는 지난 3일 미래를 책임질 전도유망한 선수들을 일본 교육리그에 파견했다. 사실,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최승준도 교육리그에 포함될 뻔 했다. 하지만 지난달 18일 아시안게임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보여준 괴력의 홈런포 한 방이 양 감독을 흔들리게 했다. 김광현(SK)을 상대로 친 홈런이어서가 아니었다. 잠실구장 백스크린을 훌쩍 넘기는 초대형 홈런포였다. 거포로서의 잠재력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양 감독은 "교육리그에 가서 경기를 많이 뛰는 것도 좋지만 최승준의 경우 관중의 압박감을 이겨내는게 더 큰 훈련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무슨 말이나면, 최승준의 경우 타격 실력은 어느정도 정점에 올랐다는 뜻. 하지만 2군에서만 주로 뛰다 관중이 많고, 긴장이 되는 1군 경기에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멘탈 부분을 강화하는게 더 시급하다는 진단이었다.
양 감독이 제대로 무대를 만들어줬다. 보통, 최승준의 커리어와 팀 상황을 고려할 때 지는 경기 후반에 장타로 분위기 반전을 위해 대타로 투입되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양 감독은 최고의 승부처에서 최승준을 투입했다. 올시즌 뿐 아니라, 최승준 야구 인생에 첫 경험이다. 이 상황을 이겨내면 최승준은 이 한 타석으로 1군 선수로 거듭나는 것이고,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아, 나는 1군에서는 안통하는 선수구나'라고 패배감을 느낄 '모 아니면 도'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최승준은 모를 던졌다. 한 타석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아니다. 최승준은 자신의 야구 인생 가장 큰 고비를 넘었다. 세상 만사, 처음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대신 한 번 난관을 극복하면 누구든 해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최승준에게는 지난해에도 기회가 있었다. 6월 2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김기태 전 감독이 전격 콜업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바로 생애 첫 선발 출전을 했다. 힘이라면 소문난 선수였다. 첫 번째 타석, 시원하게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두 번째 타석, 제대로 걸린 타구가 대구구장 외야 펜스쪽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좌측 폴대 살짝 왼쪽으로 타구가 지나가 구장 밖으로 나갔다. 파울. 그리고 그날 네 타석 모두 삼진을 먹었다. 대표팀과 LG의 경기를 지켜보다 최승준의 백스크린 홈런에 번쩍 일어나 박수를 친 김 전 감독은 "그 때 최승준의 타구가 홈런이 됐다면, 최승준이 지난해부터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말 한 끝차이로 최승준은 2013 시즌을 5타수 무안타로 마감했다.
하지만 올시즌은 다르다. 첫 안타, 홈런을 때려냈다. 안타가 무려 6개다. 여기에 승부처에서도 '나를 믿고 써도 좋다'라는 메시지를 코칭스태프에 강력하게 전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