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대회 최고의 명승부를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건 남자농구 대표팀. 아시아 최강 이란과의 결승전 숨막히는 혈투 뿐 아니라, 8강 라운드 필리핀전 대역전승으로 오랜만에 농구 열기에 불이 지펴졌다. 이 두 경기에서 많은 선수들이 투혼을 발휘했지만, 가장 눈길을 끈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양희종(KGC)이다. 넘치는 투지는 기본, 발군의 수비 실력으로 '아시아 최고 수비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했다. 간간이 터지는 공격도 나쁘지 않았다. 두 경기 모두 "양희종 때문에 이겼다"라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였다. 상대를 압박하는 거친 수비 때문에 소위 말하는 '안티팬'도 적잖게 보유하고 있었던 양희종이지만, 그 안티팬들조차 모두 매료시켰다. 단숨에 농구판 '대세남'으로 거듭난 양희종이다.
▶양희종이 밝히는 니카 바라미와의 맞대결 뒷이야기
이번 대회 이란의 주포는 센터 하다디가 아니었다. 전천후 포워드 바라미(1m98) 위주로 공격을 풀었다. 바라미는 외곽슛, 돌파 등 개인 능력이 매우 뛰어났던 전형적은 스코어러. 그를 막는 것이 관건이었던 결승전이었다. 대표팀에서 바라미를 막을 선수는 포지션으로나 수비 능력으로나 양희종(1m94)밖에 없었다.
그런데 처음에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1쿼터 시작하자마자 2개의 파울을 범했다. 결국, 경기 후반을 위해 벤치로 나와야 했다. KGC 후배 박찬희가 바라미를 맡았지만, 박찬희(1m90)는 가드. 사이즈 차이 뿐 아니라 포워드 수비에 문제점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바라미는 전반에만 21점을 몰아넣으며 한국을 긴장시켰다. 양희종은 "쉽게 표현하자면 문태영(모비스) 형의 힘인데, 슈팅 능력은 문태종(LG) 형과 비슷한 선수라고 하면 될까"라고 말했다. 문태영은 돌파와 운동 능력이 좋고, 문태종은 외곽슛이 정확한 스타일. 한 마디로 쉽게 막을 수 없는 선수라는 뜻이었다.
그래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3쿼터 이란은 바라미에게 골밑 포스트업을 지시하며 양희종을 집중 공략했지만, 양희종이 여기서 이겨내며 한국이 반전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경기 후 유재학 감독이 "양희종의 수비가 정말 좋았다"라고 칭찬했을 정도. 양희종은 "예전 국제 대회에서 이란을 만날 때 바라미와 많이 상대했었다. 분명히 능력 있고, 현재 나이(29세)를 봤을 때 최전성기에 있는 선수였다. 하지만 오히려 나를 상대로 포스트업을 하니 좋았다. 상대가 하다디를 이용했다면 더 쉽게 득점했을텐데, 바라미를 고집해 내가 죽기살기로 막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찬희가 바라미의 힘을 많이 빼놔 상대 공격이 잘 안풀렸다. 바라미는 나를 상대로 힘만 쓰고 득점을 못했다. 4쿼터에는 정말 힘들어하는게 느껴지더라. 나도 죽을만큼 힘들었지만 '내가 너보다 운동을 훨씬 더 많이 했으니 내가 이겨'라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했다. 전반 21점을 몰아친 바라미는 후반 9득점에 그쳤다.
결승전 종료 후 농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양희종 역시 이를 실감했다고. 그는 "경기 후 문자 메시지 180개가 와있더라. 동네 주민분들도 '경기 너무 잘봤다'라고 아는체를 해주셨다"라고 말하며 "이제 프로농구가 개막하는데, 프로 경기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대표팀 중고참으로 느낀 점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양희종은 "월드컵에서 5전 전패로 참패했다. 세계 수준을 느꼈다. 특히, 리투아니아와의 경기는 절망적이었다. 리투아니아는 투박하다. 그래서 비디오로 볼 때는 '별로 강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2m10 정도 되는 선수 5명이 전부 뛰고 몸싸움을 통해 가볍게 슛을 넣었다. 상대가 손을 들고 수비하면 골대가 보이지 않더라. 너무 답답했다. 왜 세계 4강팀인지 몸으로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경험이 중요하다. 강한 상대를 난생 처음 만나보니 경기 40분 내에 대처를 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강팀들을 상대로 주기적으로 A매치 형식의 경기를 치른다면 훨씬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나마 뉴질랜드와의 5차례 평가전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처참한 패배를 당했을 것이다. 우리 후배들은 더 좋은 조건에서 준비해 큰 무대에 도전했으면 한다"라고 설명했다.
▶"최고 수비수 넘어 최고의 리더가 되고 싶어요."
양희종에게 2014년은 엄청난 일이 연속으로 일어난 한 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금메달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어 원소속팀 KGC와 계약기간 5년, 최대 30억원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오는 11일 개막하는 새 시즌을 맞이한다.
양희종은 부담이 크다. FA 첫 해. 주장까지 맡았다. 알고보면 30세의 양희종이 최고참이다. KCC에서 넘어온 강병현이 29세로 넘버2인데 새 팀에서의 첫 시즌이다. 어린 선수들을 양희종이 잘 이끌어야 KGC가 긴 시즌을 온전하게 치를 수 있다.
양희종은 "사실, 아시안게임을 너무 힘들게 치러 몸상태가 좋지 않다. 마치 시즌 막판 때의 컨디션인 것 같다. 일단, 훈련보다는 치료와 휴식에 집중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그런데 내가 초반 버텨줘야 한다. 시즌 초반 기싸움에서 어린 후배들이 밀리면 끝이다. 내가 잡아줘야 한다. FA 계약 첫 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고민도 많고 부담도 크다"라고 밝혔다.
주장이라는 감투를 쓰자 자신도 모르게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한다. 양희종은 "어렸을 때는 내 농구만 하면 끝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감독님, 코치님들이 이런저런 작전을 짜고, 지시를 내리시면 나도 모르게 '왜 이런 선택을 하셨을까'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 우리 팀은 젊다. 그리고 나는 그 팀을 이끌어야 한다. 나도 팀도 시험대에 올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팀도 '양희종이 믿었던만큼 해주는구나'라고 생각을 해주실 것 같다"라고 밝혔다.
그래도 다행인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며 상무 소속이던 오세근이 바로 시즌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이다. 리그 최고의 토종 빅맨을 보유하게 된다. 양희종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다"라며 반겼다.
30세까지 숨가쁘게 달려온 농구인생. 이제 양희종 농구 인생의 제 2막이 열렸다. 이제 그의 목표는 '최고의 수비수'에서 '최고의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