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례씩 골망이 아닌 골대를 흔들었다.
전반 27분 서울의 주장 김진규의 헤딩슛이 먼저 골대를 두드렸다. 후반 8분에는 수원의 킬러 로저의 오른발 슈팅이 골대를 강타했다. 골대를 맞히면 흐름을 탄다. 효과는 2~3분 이어진다. 서울은 2분 뒤 에스쿠데로가 회심의 슈팅을 날렸다. 그러나 정성룡의 선방에 가로막혔다. 수원은 1분 뒤 염기훈의 환상적인 크로스가 로저의 머리에 정확하게 꽂혔다. 골이었다.
슈퍼매치, K-리그 클래식의 꿈이었다. 검붉은 서울과 푸른 수원의 충돌은 생동하는 전설이었다. 명불허전, 4만1297명이 상암벌을 찾았다. 또 희비가 엇갈렸다. 주인이 바뀌었다. 수원이 슈퍼매치 3연패의 사슬을 끓었다. 수원은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30라운드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1대0으로 승리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은 휘슬이 울리기 직전 "2011년부터의 아픔, 그 시간이 길었다. 3연승인데 아직 만족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2011년 4월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은 슈퍼매치 7경기 연속 무승(2무5패)을 지난해 8월 3일 끊었다. 수원의 지휘봉을 잡은 서정원 감독과의 대결을 즐겼다. 4승1무1패로 우세했다.
서 감독은 슈퍼매치에 오르면 긴장과 흥분의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은 달랐다. '너무 편안해 보인다'고 묻자 "정말 편안하다"며 웃었다. 평정심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포항한테 약했는데 연승을 하며 자신감이 생겼다. 상주 원정에서도 이상하게 안 좋았는데 그 기록도 깼다. 이제 서울이다. 유독 서울에게 약했는데 선수들이 이 경기를 기다렸다. 나도 그렇다." 서 감독의 기다림, 이유가 있었다.
▶서정원 감독 면역력이 생겼다
"일단 서울이 2골차 경기가 없지 않나. 골을 먹지 않고 지키다가 막판에 승부를 보겠다는 거다. 일단 선수들 능력도 된다. 그러다보니 다른 팀들이 당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다른 팀들도 많이 적응하고 있다. 우리도 그런 것에 대한 대비를 했다." 서 감독의 승부처였다.
만약 서울이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나온다면 어떨까. "고맙지 나야. 하지만 아마도 템포를 죽이고 안정적으로 할 거다. 대비하고 있다." 서 감독의 예상은 적중했다. 서울은 최근의 흐름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안정적인 스리백을 바탕으로 측면에서 공격을 풀어나갔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호주 원정으로 발걸음도 무거웠다. 수원은 포지션간의 간격을 최대한 좁히며 콤팩트한 전술을 구사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지공에는 지공, 스피드에는 스피드로 대응했다. 침착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자연스럽게 중원을 장악하며 경기 초반 기선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오범석의 복귀로 수비라인도 안정을 찾았다. 권창훈 김은선, '더블볼란치(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영리한 경기 운영도 돋보였다. 후반에도 흐름은 흔들리지 않았다.
서 감독은 "전반전이 끝난 후 침착하게 하자고 했다. 우리가 하던대로만 경기를 잘하고 침착하다면 찬스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게 하나 걸렸다. 그래도 더 많은 찬스가 있었는데 추가득점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수원이 이길만한 경기를 펼쳤다. 슈퍼매치는 또 다른 분수령이었다. 9경기 연속 무패(5승4무)를 달린 수원은 승점 54점으로 3위에서 2위로 점프했다. 선두 전북(승점 59)과의 승점 차는 5점이다. "선수들이 하고자하는 의지가 담긴 경기였다. 지금은 워낙 전북이 치고 나가기 때문에 계속 견제하면서 쫓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겠다."
▶최용수 감독 평정심을 잃었다
서울은 1일 웨스턴 시드니에 0대2로 패하며 ACL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흐름을 바꿔야 하는 분수령이었다. 최 감독은 "아름다움 도전을 했다. 빨리 털고 일어날 것이다. 패배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승부처에 대해 질문하자 "세트피스다. 상대성이 있지만 골이 어느 시점에 터지느냐가 중요하다. 슈퍼매치 특성상 역전극은 많이 일어나지 않았다. 심리적인 압박을 털고 편안한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슈퍼매치에 대한 흐름을 잊어버린 듯 했다.
골은 넣을 수도, 허용할 수도 있다. 교체카드에 패착이 있었다. 실점을 허용한 후 후반 11분 첫 번째 카드를 뽑았다. 김주영을 빼고 정조국을 투입하며 포백으로 전환했다. 5분 뒤에는 고요한 대신 몰리나, 후반 28분에는 차두리가 나가고 김치우가 들어왔다. 체력적인 부담은 있지만 차두리는 이날 최고의 경기력을 보였다. 반면 공격에서 엇박자를 낸 에벨톤은 마지막까지 고집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 감독은 "슈팅 상황이 몇 차례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빠른 전술 변화에 대해서는 결과론이지만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찬스를 만들었지만 아쉽다. 변화를 주면서 균형이 무너지지 않았나 싶다"며 아쉬워했다.
서울은 지난달 '뉴페이스'들로 재미를 봤다. 정조국의 가세는 천군만마지만 템포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국인 선수의 이름값에 의지한다면 미래는 없다. 서울은 클래식 9경기 연속 무패(6승3무)가 끊겼다. ACL을 포함해 최근 5경기에서 단 1골에 불과하다. 승점 43점에 머물며 순위는 5위에서 그룹A의 커트라인인 6위로 떨어졌다. 위기의 서울이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