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이자 제작자인 윤호진은 '창작뮤지컬의 대부'로 평가되는 사람이다. '명성황후'(1995), '영웅'(2010) 등을 통해 창작 뮤지컬의 대중화에 기여해왔다. 이런 그가 '창작 뮤지컬의 글로벌화'를 기치로 새로운 도전을 선보여 뮤지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9일부터 11월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초연되는 뮤지컬 '보이첵'이 그 무대다.
'보이첵'은 1837년, 24세의 나이로 요절한 독일의 천재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가 남긴 미완성 희곡이 원작이다. 1820년대 독일에서 실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노동계급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가난 때문에 생체실험 대상에 자원하고, 권력자에게 아내를 유린당하다 미쳐버리는 비극적인 인물 보이첵이 주인공이다. 계급사회의 부조리를 리얼하게 그린 문제작으로 연극은 물론 무용, 오페라 등 여러 장르로 다양하게 해석돼왔지만 상업뮤지컬로 제작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에이콤과 LG아트센터가 공동제작, 윤호진이 연출을 맡고, 작곡과 극본은 영국의 언더그라운드 밴드 싱잉 로인스(Singing Loins)가 담당했다.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에 주력해온 윤호진이 이렇게 변신을 시도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지난 2003년 '명성황후' 북미 공연에서 한국어 뮤지컬을 자막으로 보여주며 현지인을 공략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며 "해외 스태프와 협업해서 그들의 아이디어와 감성을 투여한 '영어 뮤지컬'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보편적이면서도 강렬한 드라마를 품고 있는 '보이첵'이라면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걸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윤호진은 영국의 유서 깊은 그리니치 극장의 도움을 받아 2007년 창작진을 공모해 언더그라운드 밴드 '싱잉 로인스'를 발탁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펍에서 노래를 부르는 무명밴드였지만 그들의 음악에는 '보이첵'의 강렬한 정서가 담겨져 있었다.
뮤지컬 '보이첵'은 2008년과 2012년 런던에서 두 차례 워크숍을 가져 작품을 완성했다. 본격적인 세계 시장 공략에 앞서 일종의 프리뷰 형태로 한국어로 먼저 공연된다. 주인공 보이첵에는 김다현과 김수용을 발탁했고, 여주인공 마리 역에는 김소향, 마리를 유혹하는 군악대장 역에는 베테랑 김법래가 캐스팅됐다.
'해외스태프와의 협업을 통한 창작 뮤지컬의 세계화' 시도는 '보이첵'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7년 신시컴퍼니가 독일 작곡가 에릭 울프슨과 손잡고 '댄싱 셰도우'를 공연한 바 있으며, 설앤컴퍼니도 2011년 '지킬 앤 하이드'의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 함께 '천국의 눈물'을 선보였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결과는 실패였다. 초연 이후 재공연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서와 낯설었다는 점, 그리고 음악이 신통치않았다는 점이 패착으로 지목됐다.
'보이첵'은 한국 관객을 타깃으로 한 한국어 공연에서 벗어나 아예 세계인을 향한 영어 공연으로 제작됐다. '신선하기는 하지만 원작이 너무 어둡지 않느냐'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미리 공개된 주요 넘버들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마침내 베일을 벗는 뮤지컬 '보이첵'이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지 궁금하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