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영웅' 박태환(25·인천시청)의 세번째 아시안게임, 다사다난해던 레이스가 끝났다.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동 소속사인 팀GMP 사무실에서 박태환과 마주앉았다. 인터뷰보다 조근조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숨가쁜 엿새간의 레이스에서 박태환은 5개의 동메달(자유형 200-400m, 400-800m 계영, 400m 혼계영)과 1개의 은메달(자유형100m)을 목에 걸었다. 도하, 광저우, 인천, 3번의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20개의 메달을 따내며 최다메달의 위업을 달성했지만, 안방에서 열린 3번째 아시안게임은 가장 힘든 대회였다. 믹스트존에서 "경기가 다 끝나고 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다"고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스마일가이 "속으로는 계속 울었다"
박태환은 1등만 해온 선수다. 2004년 멜버른세계선수권,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는 대한민국 유일의 수영선수였다. 이기는 법만 알던 박태환은 안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그렇게 간절했던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박태환의 동메달은 본인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시상대, 기자회견, 인터뷰에서 박태환은 침착했다. 미소와 품격을 잃지 않았다. 물속에서 가장 먼저 우승자에게 다가가 축하를 건넸고, 시상대에서 가장 밝은 미소로 팬들의 환호에 화답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박태환은 "사실 속으로는 계속 울었다"고 했다. "시합 때마다 제 자신이 답답했다. 이렇게까지 못하나. 몸이 이렇게 안따라주나, 그저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내 이름을 딴 박태환수영장에서 수많은 팬들이 응원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뿌듯했다. 메달색과 관계없이 '잘했다'고 소리쳐주셨다. 보답은 환하게 웃어드리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하, 광저우때와 인천은 달랐다. 세계적인 선수들과 시상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기노는 첫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도하때의 나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쑨양은 인천에서 처음 아시안게임 400m 금을 땄다. 광저우때 나와 비슷한 기분이었을 거다. 일 것 같았다. 그렇게 공감이 되더라. 진심을 축하할 수 있게 됐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 아는 방법도 알게 됐다.".
▶경기 전날 풀린 근육 "과도한 긴장감 탓"
박태환은 "사실 경기를 잘 뛰고 나서,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변명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솔직히 200m 경기를 2~3일 앞두고 정신적으로 산만하고 흔들렸다"고 고백했다. "세계 1위 쑨양이 자꾸 내이름을 언급했고, 수영장에선 다들 쑨양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라고 권했다. 나는 쑨양을 만나기 위해 아시안게임에 나간 것이 아닌데, 그런 요청들이 불편했다. 집중을 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심리적인 동요는 '5초 미스터리'로 이어졌다. 8월23일 팬퍼시픽선수권에서 3분43초15, 올시즌 세계최고기록을 작성했던 박태환이 9월23일 400m 결선에서 무려 5초나 뒤처진 3분48초33의 기록으로 3위에 그쳤다. '안방 부담감'만으로는 한달 사이의 급락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대회 일주일전 등에 담이 들어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박태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심플하게, 생각이 많았던 게 이유"라고 단언했다. "생각이 많으면 몸이 경직된다. 심지어 레이스 중에도 생각이 많았다. 50m는 이렇게, 100m 는 이렇게, 하기노도 신경쓰이고, 쑨양도 신경쓰이고, 복잡했다. 내 레이스를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심리적 부담감은 예민한 몸으로 전해졌다. 200m 경기 직전 어깨 근육이 풀렸다. 비상상황이었다. "경기 전날 몸이 소위 '시합몸'이 아니었다. 근육이 풀렸다. 생각이 많았다. 긴장을 하면 몸이 풀린다. 경기 직전에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긴장한 적이 없었다. 걱정이 많이 됐다"고 했다. 전담팀에게도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경기전후 박태환을 마사지하는 손석희 트레이너만이 이상을 알아챘다. "몸을 만져주는 사람은 당연히 안다. 손 선생님은 내가 걱정할까봐, 나는 손 선생님이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 눈빛으로 알았다"고 했다. "그 풀린 몸으로 200m 결선에서 1분45초대를 찍은 것이 놀라울 지경이었다. 마지막 15m에서 사실상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늘 26초대에 끊는 마지막 50m에서 27초50을 찍었다. 터치패드를 찍고나서 속상해서 기록도 보지 않았다"고 했다.
자유형 200m 동메달 후 자유형 400m의 부담감은 더 커졌다. "400m 때는 200m를 만회하고픈 생각이 컸다. 내가 시즌1위 기록 보유자라는 사실을 팬들도 아시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200m 턴 직후, 또다시 미칠 것같은 답답함이 찾아왔다. 박태환은 "하마터면 답답해서, 중간에 나갈 뻔했다. 맘은 쑨양, 하기노와 같이 가고 있는데, 몸이 말을 안듣는 상태…. 끝까지 어거지로 버텼다"고 말했다. "경기직전 페이스가 좋았고, 준비도 잘됐다. 연습 페이스도 좋았다. 그런데 경기 내내 풀린 근육이 돌아오지 않았다.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
▶내게도 쑨양 같은 후원사가 있었더라면
3번째 아시안게임은 박태환에게 아쉬움이다. "아쉬움이 제일 많다. 하지만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의미 있는 대회였다"라고 자평했다. "미흡한 경기가 나타난 경기를 통해 배웠고, 안방에서 뛰었을 때 내가 이런 것에 약했구나라는 것도 알았다. 곧 부담감, 압박감을 심리적으로 이겨내지 못한 부분도 대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400m 금메달 기자회견에서 쑨양이 "힘든 상황에서도 후원을 아끼지 않은 361에 감사한다"는 코멘트를 언급했다. 박태환도 그날의 기자회견을 기억하고 있었다. "옆에서 웃었지만, 씁쓸했다.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다. 쑨양은 잡음이 많은 시즌이었지만, 어찌 됐든 금메달을 땄다. 잡음이 많은데도 기업이 끝까지 믿고 후원해준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내게도 그런 후원사가 '있었더라면', 아니 '있다면'… 그 회사를 위해 쏟을 것같다"고 했다. 미래를 묻는 질문에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아직은 할 수 있는 능력 있으니까…"라고 자신감을 표하더니 "후원사 없이 혼자 하게 되면 좀…"하며 말을 줄였다. 싱긋 웃으며, '절친' 손연재의 경기로 재치있게 화제를 돌렸다. "오늘부터 연재 경기죠? 이번 아시안게임, 제 게임은 아니었지만, 연재의 아시안게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응원한다고 전해주세요." 인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