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대만의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양궁 여자 컴파운드 단체전 결승이 열린 27일 인천 계양아시아드 양궁경기장. 마지막 화살이 과녁을 꿰뚫는 순간 최보민(30·청주시청)과 석지현(24·현대모비스) 김윤희(20·하이트진로)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관중들을 향해 큰절도 했다. 그리고 최보민과 석지현이 한자리에 모였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자신들의 스승, 고(故) 신현종 감독을 향한 세리머니였다.
신 감독은 2013년 10월 터키 안탈리아 세계선수권대회 도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한국 컴파운드 여자대표팀은 단체전 8강전에서 강풍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최보민과 석지현도 바람을 이기지 못했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0점을 쏘기도 했다. 신 감독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했다. 병원에 실려간 신 감독의 상태는 악화됐다. 뇌부종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 감독은 1977년 오창중학교 양궁코치에 오르며 지도자 생활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지난 2002년 청원군청 양궁부 감독에 올라 최보민 김문정 최은정 등 수많은 국가대표 메달리스트들을 길러냈다. 국제대회에 나와 컴파운드를 눈여겨봤다. 컴파운드는 익히 알고 있는 리커브와 다르다. 활 위아래로 도르래가 달려있어 흔들림이 적다. 시위를 당겨 고정했다가 격발스위치를 누른다. 확대경도 달려있다. 유럽과 미주대륙에서는 큰 인기다. 인프라만 잘 구축된다면 세계 최강 리커브에 못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컴파운드 선수들 육성을 시작했다. 그 가운데 있던 선수가 바로 최보민과 석지현이었다.
원래 최보민은 리커브를 했다. 이름도 최보민이 아닌 최은영이었다. 2006~2008년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를 누볐다.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 금메달, 월드컵 파이널 은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2008년 어깨부상이 찾아왔다. 시위를 당기는 오른 어깨를 다쳤다. 수술 후에도 심한 통증 때문에 시위를 당길 수 없었다. 은퇴 위기에 몰렸다. 은사인 신 감독을 찾아갔다. 신 감독은 컴파운드로의 전향을 권유했다. 아픈 어깨를 쓰지 않아도 됐다. 주부였던 최보민은 은사를 믿고 따랐다. 청원군청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실력을 키워갔다. 이름도 은영에서 보민으로 바꾸었다. 어려움도 있었다. 시작하자마자 슬럼프에 빠졌다. 이 때 신 감독이 중심을 잡아주었다. 1년정도 지나면서 서서히 적응했다. 국제대회에 나가면서 일취월장했다. 모든 것이 신 감독 덕분이었다.
석지현 역시 리커브를 했다. 한체대 시절까지만 해도 리커브 최하위 면하기가 최대 과제였다. 뒤에서 1,2등을 도맡았다. 선수를 그만두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2년간 의무적으로 선수 생활을 해야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돌파구로 삼은 것이 컴파운드였다. 국내랭킹 70위 정도면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컴파운드의 선수층은 얇았다.
석지현과 컴파운드는 찰떡궁합이었다. 2008년 컴파운드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신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함께 컴파운드의 역사를 써나갔다. 2009년 울산세계선수권대회컴파운드 단체전에서 은메달, 혼성부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경험을 쌓은 석지현은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동메달을 1개를 따냈다. 2013년 신 감독이 없는 가운데 출전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금메달 1개와 동메달1개를 따냈다.남은 것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뿐이었다.
대만과의 결승전 직전. 최보민과 석지현은 손을 맞잡았다. "신 감독님이 하늘에서 지켜봐 주실거야. 걱정하지 말자"고 서로 다독였다. 김윤희도 언니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은 김윤희는 리커브를 하다가 어깨를 다쳤다. 활은 자신에게 전부였다. 고심한 끝에 2010년 컴파운드로 전향했다. 컴파운드의 대부 신 감독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들은 금빛 화살을 하늘에 있는 신 감독에게 보냈다. 최보민과 석지현은 개인전에서도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냈다.
2관왕에 오른 최보민은 "비록 오늘은 신 감독님과 함께 하지 못했지만 항상 저희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한다. 단체전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하늘을 보고 손가락 찔렀는데 이는 감독님한테 한테 보내는 세리머니였다"고 했다. 석지현도 "국제 대회에서 처음 금메달을 땄을 때부터 항상 금메달을 딸 때면 신 감독님이 옆에 계셨던 것 같다"면서 "오늘도 여기 어딘가 와계실 것이라 생각하고 편하게 경기를 치렀다"고 말했다. 인천=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