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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더비'는 왜 그리도 싱겁게 끝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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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에만 세 골, 후반에는 두 골. 최용수 감독은 "내게도 낯선 상황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16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21라운드에서 서울이 인천을 5-1로 눌렀다. 지난 시즌 네 번의 맞대결에서 두 번의 펠레스코어(각 팀 1승씩)와 두 번의 무승부(2-2, 0-0)를 기록했을 만큼 팽팽했던 '경인더비'는 왜 그리도 싱겁게 끝났을까.

인천은 엉덩이를 뒤로 뺄 생각이 없었다. 김도혁의 움직임, 이에 따른 연쇄 이동만 봐도 그렇다. 서울(3-4-3)과 인천(4-2-3-1)이 내세운 시스템상 수비형 미드필더 김도혁의 전진은 중원 숫자 싸움을 앞쪽에서 걸려는 의도로 비쳤다. 용현진이 아래를 받칠 때, 이보와 김도혁은 이상협-최현태 라인을 겨냥해 조금이라도 높은 선에서 볼 소유권을 훔치려 했다. 공격 전환 작업의 완성도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중앙선 안팎 등 전방에서의 압박도 방법이 될 수 있었을 터. 선제골의 향방이 곧 3연승 기세를 이어갈 중대 요소였으므로 초반부터 욕심을 냈다.

이는 신재흠 연세대 감독이 검증해 보인 '김도혁 활용법'과도 유사했다. 수비를 하면서도 어느샌가 올라가 왼발을 휘두르던 포스에 대학팀이 숱하게 나가떨어졌다. 이효균 및 2선 공격진만으로 상대 쓰리백을 흔들기 어려웠을 때, 김도혁은 제법 요긴한 득점원이었다. 수비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신 감독은 결정적 승부처마다 김도혁을 상대 키 플레이어에 맨투맨으로 붙여버렸다. 지난해 열린 고려대전 중 추계연맹전에서는 안진범(울산)을 지우며 득점까지 해냈고, 정기전에서는 이재성(전북)을 묶어 두 경기 모두 승리한 바 있다. 기본적으로 많이 뛸뿐 아니라, 어느 타이밍에 공격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귀신같이 잡아낸다.

대신 김도혁이 흘린 공간을 메워야 했다. 왼쪽 측면 수비 박태민이 중앙으로 자주 온 것도 이 때문. 동료와의 수비 거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고요한의 움직임을 쫓기 위함이었다. 이에 대해 고요한은 "(박)태민이 형이 바짝 붙어왔다. (고)광민이가 측면에서 앞으로 나갈 수 있게끔 중앙으로 많이 좁혀왔다"라고 설명한다. 박태민의 자리는 문상윤이 자주 내려와 채웠다. 서울은 중원에서 볼을 잡은 뒤 측면으로 크게 벌리고, 다시 골문으로 좁혀 오는 과정을 지금껏 자주 연출해왔다. 박태민이 비운 공간에서 서울의 윙어, 혹은 윙백이 볼 잡는 장면이 많다 보니 수비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상단 캡처 참고).

단, 문제가 있었다. 일련의 스위칭이 일어날 때, 라인 간격의 탱탱함이 떨어졌다. 2선과 3선, 그리고 최후방 수비 라인 사이가 종종 비는 현상이 발생했고, 특히 중앙 수비 앞쪽에 상대가 볼을 잡을 만한 공간이 노출됐다. 후방의 불안함을 안고 싸우던 인천은 전반 29분 윤일록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 상황에서 오스마르가 뿜어낸 롱패스에 꼼짝없이 당했다. 최 감독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해 패스 공급처로 삼았을 만큼 왼발 피딩 능력이 특출했다. 급히 들어온 볼에 대처가 안 된 순간, 윤일록은 안정된 동작으로 슈팅 타이밍을 잡았다. 왼쪽 측면에서 들어와 오른발로 감아 때리는 건 확실히 리그 정상급이었다.

흔들리는 밸런스 앞에 장사 없었다. 전반 36분 고요한의 두 번째 골 장면. 측면에서 썰어오는 짧은 패스웍에 수비 진영이 찢기면서 상대 공격진을 인지하지 못했다. 전반 42분에는 김치우에게 세 번째 골까지 내준다. 경기 초반부터 서울 공격진과 맞붙어 힘, 스피드에서 부담을 느낀 인천의 중앙 수비는 이 장면에서도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일대일 경합을 할 때 수비는 보통 두 발을 횡(좌우)이 아닌 종(앞뒤)으로 놓는다. 상대 공격수가 특정 방향을 택해 전진할 경우 몸을 돌려 빠르게 대응하기 위함인데, 안재준은 골문 쪽으로 드리블을 치며 역동작을 노린 김치우의 속도를 이겨내질 못했다.

크게 기운 승부 속, 인천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후반 초반부터 라인을 바짝 올려 도박을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미 폭삭 주저앉은 데다 상대는 야속할 만큼 공격 템포를 늦추지 않았다. 최용수 감독이 로테이션 차원에서 내보낸 '경기에 굶주린 이들'은 3-0 상황에서도 다음 골을 준비했고, 경기 막판에는 수비수 김진규까지 골문 앞으로 뛰어들어와 역습을 펼쳤다. 공격이 급했던 인천이지만, 수비는 수비대로 해야 했다. 70분 언저리부터 드리울 체력 저하의 그림자는 이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

수비 앞공간을 더 자유롭게 풀어주면서 후반 31분 몰리나에게, 36분에는 이상협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상대 슈팅 모션을 통제하지 못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이었지만, 서울이 쏜 대부분의 슈팅이 필요 이상으로 높은 퀄리티를 보여 어찌해볼 도리도 없었다. 이렇게 '되는 날'에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진성욱의 만회골이자, 4경기 연속골이 유일한 위안거리. 영패를 겨우 면한 인천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다음 경인더비는 다음달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다시 열린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