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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해무' 시사회 후, 유승목을 검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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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무' 시사회를 마친 뒤 제일 먼저 유승목이란 배우를 검색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가 궁금했으니까. 뽀글머리에 질척한 입술, 주름 패인 미간이 생생한 경구 역을 맡은 배우. 영화 속 그의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김윤석 문성근 박유천 등 쟁쟁한 선배와 슈퍼스타 사이에서도 제 몫을 당당히 해냈다.

"'해무'는 아마 관객들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과하게 치장하지 않고, 포장되지도 않았죠. 어떤 장치를 보태지 않고, 진솔하게 인간 만을 다루는 영화라고 할까."

그는 '해무' 속에 갇힌 몽환적인 여정에서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맡았던 경구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다. "제일 먼저 '나'를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에요. 하지만 그 이기심의 깊이는 깊지는 않죠. 얄팍한 욕심으로 그때 그때 딱 한 수만 보는 그런 인간, 빤히 보이는 욕심이 보이는 그런 인간 있잖아요. 감독님과 초반에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월척을 잡으려면, 툭툭 한 번씩 뒤집거나 그래야 한다고. 밑밥을 던져도 그런 큰 고기들은 쉽게 물지 않고 몇 시간동안 경계한다고…. 하지만 경구는 달라요. 그저 조그마한 반응에도 팔딱팔딱 뛰는 피래미죠. 자신이 위태로운지 감도 없이 순간의 이익을 위해 이기심을 드러내는 그런 인간. 그래서 밑밥에도 탁 잘 걸리는 그런 인물이에요."

경구를 연기하다가 슬럼프에도 빠졌었다. "촬영은 계속 이어져 가는데 내 연기가 제 자리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울해지더라고요. 저녁 시간에 윤석이 형이 자주 우리들을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한 번은 윤석 형이 불렀는데도 쉬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내 방으로 갔더니 (김)상호가 찾아왔어요. 정말 너무 고마웠고 술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봉준호 심성보라는 거장 콤비의 대작 속에서 '유승목'이란 이름 석자를 새기고 싶었던 욕심은 없었을까.

"글쎄. 관객이 나를 어떻게 볼까. 이런 생각은 사실 '새발의 피'였어요. 어차피 영화로 보여지는 모습인데, 그저 처음에 이 영화에 캐스팅되고 배우들을 봤을 때는 '아! 배우들 연기 잘하는 배우들만 모아놨구나. 처음 보는 배우도 있었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의 집합소다. 여기에 나는 어떻게 버무러지면 좋을까' 이런 생각이 컸어요. 훌륭한 배우들이 많으니까 관객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는 결국 작품 안에서 캐릭터로서 다른 캐릭터들과 녹아드는 게 첫번째라고 생각했어요."

69년생 유승목, 90년에 극단 가교 단원으로 활동해 온 연기 경력이 벌써 20년을 지났다. 진짜 배우는 홀로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져 작품을 빛내야 한다는 사실. 알고도 남을 때다.

"연극을 오래하다가, 봉 감독의 '살인의 추억'으로 영화에 첫 발을 디뎠어요. 그게 벌써 한 10년이 됐나보네요. (영화를 좀 늦게 시작한 이유가 있다면) 내가 연기를 잘못했나봐요. 사실 그런 생각에 빠진 적도 있어요. 나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없을까. 본인의 캐릭터들이 있어서 쭉 연결지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없나 그런 고민도 사실 하긴 했죠."

"2,3년 전에 들었던 생각인데요. 어떤 역할을 해도, 어떤 캐릭터를 해도 나만의 컬러로 가야하는 걸까에 대한 고민?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 때 그 때의 역할에 맞게 해온 게 잘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게 잘 연기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봉 감독이 '해무'가 끝나고 배우들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해줬어요. 나에 대해서는 '팔색조의 연기파 배우'라고 해줬는데, 그 말이 정말 가슴 벅찬 느낌이었어요. 너무 너무 좋더라고요."

올해 화제작 '한공주'에서는 딸을 지켜주지 못한 아버지로, '해무'에서는 즉흥적이면서도 강렬한 뱃사람 경구로, 그리고 집에서는 16살 큰 딸과 12살 작은 딸의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는 유승목. 다양한 상황 속에서 제 각각 다른 색을 발산하는 '팔색조'와의 인터뷰 시간이 어느덧 짧은듯 길게 흘렀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