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경기 뒤 다른 팀 감독 처럼 총평에서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6일 사직 롯데-NC전을 마치고는 보통 때와 달랐다. 7일 1군 엔트리 변화를 하루 전에 사전 예고했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전 포수 강민호, 야수 김문호 그리고 승리조 불펜 김성배를 1군 말소하고, 대신 용덕한 김주현 김사율을 1군 콜업한다고 발표했다. 또 강민호의 2군행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밝혔다. 김시진 감독은 "강민호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달라진 김시진 감독의 생각
이 조치는 평소 김시진 감독의 얘기와는 다른 결정이었다. 김 감독은 강민호에 대한 믿음이 매우 컸다. 강민호의 몸이 아픈 경우를 제외하고 2군으로 내려보낼 경우 롯데가 더 손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타격이 부진하지만 안방마님으로서 수비 측면을 고려해서라도 1군에 계속 남겨두는게 낫다고 설명했다.
강민호는 지난 7월 KIA 송은범의 직구 헤드샷을 맞고 2군을 다녀온 적은 있다. 하지만 이번 처럼 타격 부진 때문에 1군 엔트리에서 빠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강민호의 7일 현재 타격 지표는 이렇다. 타율 2할1푼5리. 규정타석을 채운 54명 중 가장 아래에 있다. 10홈런 28타점 74삼진, 득점권 타율 1할4푼8리. 2004년 프로 입단 이후 이번 시즌 타격 성적이 가장 나쁘다. 이번 시즌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진 걸 감안하면 강민호의 부진은 더욱 눈에 띈다.
그런데 강민호의 이런 타격 슬럼프는 최근 갑자기 찾아온 건 아니다. 4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김시진 감독과 박흥식 타격코치는 오랜 기간 강민호가 올라올 것이라며 기다렸다. 둘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강민호는 언제 잘 쳐줄까요"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김 감독은 "나도 모르겠다. 더이상 강민호에 대해 질문을 안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강민호을 2군으로 내려보는데는 매우 신중했다.
6일 열린 NC와의 서스펜디드 경기가 터닝포인트였다. 강민호는 4타수 무안타. 특히 1-2로 끌려간 8회 1사 만루 찬스에서 무기력하게 3구 삼진을 당하고 물러났다. 외야 희생 플라이만 쳐주었더라도 동점이 돼 팀 분위기를 전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롯데는 1대3으로 역전패했다.
김 감독은 6일 두번째 경기에서 선발 포수로 강민호 대신 장성우를 선택했다. 장성우는 2루타 2방에 볼넷 2개로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앞선 강민호의 타격 페이스와 크게 대조를 이뤘다. 또 팀이 10대4로 승리했다. 그리고 강민호의 2군행을 발표했다.
▶강민호에게 배려와 동시에 경고 메시지 보냈다
이번 2군행은 김시진 감독이 강민호에게 보내는 확실한 경고의 메시지라고 보는 게 맞다. 김 감독은 선수에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강민호의 2군행을 이례적으로 하루 일찍 공개하면서 구체적인 설명까지 달았다. 강민호가 롯데 팀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강민호에 대한 배려와 함께 이후 분명히 다른 경기력 보여달라는 주문의 의미도 있다.
롯데는 지금 치열한 4위 싸움을 하고 있다. 밑에서 LG와 두산 등이 4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매일 경기가 결승전 같다. 또 위로는 3위 NC를 추격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맨 우선 순위는 개인이 아닌 팀이라는 것이다. 팀의 승패에 도움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강민호가 6일 보여준 무기력한 3구 삼진 아웃은 치명적이었다. 전문가들은 롯데가 강민호가 빠지고 용덕한 장성우 2명의 포수로도 당분간 버티는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용덕한은 지난달 LG 정성훈과 홈에서 충돌해 발목을 약간 다쳤지만 지금은 큰 문제가 없다. 김시진 감독은 강민호를 빼고도 8월 순위 싸움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7일 1군 말소되는 강민호는 최소 10일이 지나고 17일부터 1군 등록이 가능하다.
강민호가 받는 심적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김시진 감독은 최근 강민호가 자기 방으로 찾아와 괴로운 심정을 토로했던 일이 있다고 한다. FA 75억원 계약과 주변의 큰 기대 등이 자신에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강민호는 지난달말 발표된 인천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최종 엔트리(24명)에 뽑혔다. SK 이재원과 함께 포수 2명에 발탁됐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삼성)은 강민호가 지금은 부진하지만 그의 풍부한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다. 누가 뭐래도 강민호가 지금 국내야구에선 최고의 포수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강민호가 평균치를 해줄 것으로 믿는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국내 최고 포수라는 강민호가 롯데 2군으로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결국 선수는 자신의 평균치를 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올해 부진하더라도 내년에 예전 같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 코칭스태프는 당장 올해 성적이 중요하다.
강민호의 올해 타격 성적은 그의 프로 통산 평균에 턱없이 모자란다. 현재 그의 프로 통산 타율은 2할6푼8리다.
강민호는 롯데 구단이 입단 이후 전략적으로 키운 선수다. 포철공고를 갓 졸업한 어린 강민호에게 많은 출전 기회를 주었다. 2005년부터 100경기 이상 출전했다. 강민호는 급성장했고, 나이 서른을 넘기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말 첫 번째 FA를 했다. 롯데는 강민호와 4년간 총 75원에 계약하면서 FA 최고액 신기록을 세웠다. 롯데는 이미 롯데 야구의 상징이 된 강민호를 다른 구단에 빼앗길 수 없었다. 강민호를 잡지 않았을 경우 쏟아질 부산 야구팬들의 질타도 감안했다.
그렇게 롯데에 남은 강민호가 FA 첫 시즌 이렇게 힘든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일부 팬들은 강민호를 향해 미우나 고우나 무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 반면 일부에선 강민호에게 날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부산=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