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포수가 앉아있는 홈플레이트 부근을 '안방'이라고 표현한다. 그렇다고 야구의 홈플레이트는 100% 안방 마님의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안방을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포수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들어오는 손님에게도 여유를 내줘야 한다. 포수의 홈 블로킹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가 열렀던 4일 잠실구장. 이날 경기 하이라이트는 5회말 LG의 비디오 판독 요청 성공이었다. LG 양상문 감독은 시즌 네 번째 도전 만에 합의 판정 성공을 이끌어냈다. 결정적이었다. 만약 아웃이 됐다 치자. 2사 주자 2루 5-3 상황. 2루 주자를 불러들일 가능성이 100%가 아닌 이상 홈에서 접전을 펼친 주자가 살아 6-3이 되는 것은 중요했다. LG는 이 점수 1점으로 넥센의 기를 확실히 꺾어놨다.
비디오 판독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 상황에서은 또 다른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바로 왜 이 상황에서 비디오 판독을 할 장면이 연출됐느냐는 것이다. 1사 2, 3루 상황서 채은성의 우중간 텍사스 안타 때 2루 주자 이병규가 과감히 홈을 파고 들었다. 넥센 포수 박동원이 송구를 기다리며 홈 블로킹을 시도했다. 이병규는 포수 오른쪽 방향으로 슬라이딩을 하며 손으로 터치를 했다. 그 순간 기다리던 박동원의 무릎에 얼굴을 부딪히기도 했다. 엄청난 충돌 상황에 문동균 구심이 정확한 판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포수의 홈 블로킹. 항상 논란을 야기한다. 접전 순간에 포수는 홈을 막아야 한다. 점수를 주지 않을 포수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단, 이는 주자가 홈으로 들어올 때 송구가 자신의 미트에 도달했다는 가정 하에서다. 송구가 오지도 않았는데 점수를 주지 않겠다고 홈을 막아서고 있으면 반칙이다. 홈을 향해 파고드는 주자도 홈을 찍고 득점을 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언제 홈을 막아야 하나, 언제 비켜줘야 하나 정확한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애매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주자 입장에서 '왜 공이 오지도 않았는데 홈을 막아서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포수는 '충분히 접전 타이밍에 공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고 항변할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이날 플레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접전 상황에 비해 확실히 박동원의 홈 블로킹은 한타이밍 빨랐다. 그렇다고 그냥 홈을 열어주기에도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포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베테랑 홍성흔(두산 베어스)이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해줬다. 홍성흔은 "포수로서 야구를 배울 때 홈 블로킹 상황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정확한 원칙이 있지 않지만, 야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룰이 정해져 있다"고 했다.
홍성흔은 "점수를 내야 하고, 막아야 하는 것은 프로 선수들의 숙명"이라고 말하면서도 "서로의 권리는 확실히 지켜주는 선에서 플레이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포수는 공이 오지 않는 순간에도 홈을 막아도 된다. 하지만 주자가 들어올 때 공을 잡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을 하면 주자의 홈 터치를 위해 발을 쓱 빼주는게 예의다. 베테랑 포수들의 경우 이 상황 판단을 빨리 한다. 그래서 무리한 플레이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 또는 주전급 선수가 아닌 백업 선수들이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하기 위해 무리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 주자 입장에서 포수가 무리하게 홈을 막아서고 있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바디 체킹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홍성흔의 설명에 따르면, 이 바디 체킹에도 암묵적인 룰이 있다고 한다. 이 주자가 내 권리를 찾기 위해 안전하게 충돌을 하는지, 감정이 섞여 상대 포수를 다치게 하는 의도로 부딪히는지는 현장에서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전자면 상대 팀도 이 플레이에 대해 어떤 얘기도 꺼낼 수 없다. 하지만 후자면 다르다.
문제는 한국 선수들, 주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인 바디 체킹 플레이에 익숙지 않다는 것이다. 이병규도 마찬가지였다. 포수를 피해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야구판이 좁다. 학연-지연도 있고, 선-후배 관계가 엄격하다. 언제 같은 팀 선수가 될 지 모른다. 때문에 상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무리한 인상을 주는 플레이를 최대한 자제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주자가 손해다. 0.1초로 세이프, 아웃이 갈리는 순간 태그를 피해 방향을 바꾸고, 몸을 꼬는 것만으로도 몇 초의 시간이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상도 문제다. 서로 충돌을 하면 피하는 사람이 태그를 위해 길목을 막아서는 사람보다 다칠 확률이 높다. 홍성흔은 "주자는 포수가 무리하게 막아선다고 생각되면 부딪혀 이겨내야 한다. 그게 맞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무대에 데뷔한 외국인 선수들의 경우 이런 바디 체킹을 자주 사용한다.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에서 뛴 가르시아가 그랬고 올시즌에는 롯데 히메네스가 홈에서 과감한 주루 플레이를 선보인다. 이들이 쇼맨십을 발휘하는게 아니다. 정상적으로 배운 자신들의 야구를 하는 것일 뿐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소속팀의 승리를 위해 몸을 내던지는 주자, 포수들의 플레이는 아름답다. 단, 이 블로킹 상황을 주의해야 하는 것은 승리, 성적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의 몸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규도 자칫했으면 충돌 과정에서 큰 부상을 당할 뻔 했다. 치열한 승부도 서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갈려야 아름다울 수 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