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치더라도 좌타자를 내보내야 한다."
NC 다이노스 김경문 감독은 '좌우놀이'를 거부하는 사령탑 중 한 명이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파격적인 라인업이 가능했을 것이다. NC가 30일 창원 KIA 타이거즈전에 이틀 연속 좌타자 5명을 1번부터 5번 타순에 배치하는 초강수를 뒀다.
왼손타자가 많은 NC에서 이상할 게 없는 라인업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라인업을 선보인 건 올시즌 처음이다. 지난 주말 삼성 라이온즈에 3연패한 뒤 변화를 꾀했다.
핵심은 이종욱의 3번 타순 배치였다. 리드오프 박민우와 함께 테이블세터로 나서던 이종욱이 클린업 트리오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지난해 도루왕 김종호가 대신 2번 타순에 배치됐다.
어찌 보면 극단적인 타순이다. 상대 입장에선 편안하게 불펜진을 운용할 수 있다. 타자유형에 따라, 좌-우투수 배치를 하면 그만이다. 흔히 말하는 '좌우놀이'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NC는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좌타자 폭탄은 기동력에 장점이 있다. 박민우와 김종호, 이종욱 모두 과거 1번으로 뛰었거나, 리드오프로 설 수 있는 이들이다. 팀에서 가장 빠른 세 타자, 팀내 도루 1~3위 선수가 1~3번으로 전진배치됐다. 4번 타자 나성범도 도루 10개로 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들 모두에게 도루를 바라는 건 아니다. 타순에 걸맞게 자기 역할을 해주면 된다. 특히 이종욱은 어느 타순에 갖다 놔도 그에 맞는 역할을 해주는, 김경문 감독이 신뢰하는 베테랑이다. 3번으로 나선 경험도 있다.
30일 경기에 앞서 만난 김 감독은 "8월이 다가오는데 또다른 카드를 만들어놔야 하지 않겠나"며 웃었다. 이미 4강행의 승부처를 8월이라고 못박았던 김 감독이다. 8월이 오기 전에 새로운 라인업을 하나 더 짜본 것이다. 지난 주말 삼성과의 3연전에서 전패하자, 분위기 반전을 위해 새로운 카드를 준비했다,
김 감독은 새로운 라인업에 대해 "종욱이에게 많은 타점을 기대한 건 아니다. 1~3번 타자가 많이 나가길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출루율이 좋은 리드오프형 타자 세 명을 전진배치해 득점력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전날은 상대 선발이 우완 서재응이었지만, 이날은 좌완 임준섭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왼손투수 공을 못 치더라도 좌타자를 계속 내보내야 한다. 만약 계속 못 친다 하더라도 나가다 보면, 약한 투수가 나왔을 때 칠 확률이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어떤 공이든 익숙해지면 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날 역시 NC의 새 라인업은 효과적이었다. 4회 나성범이 추격의 솔로홈런을 터뜨렸고, 5회에도 박민우 김종호의 연속안타에 이종욱의 내야 땅볼로 2점째를 뽑았다. 좌타자 라인이 점수를 연달아 만들었다. 모창민의 솔로포로 3-4로 따라붙은 7회 나성범의 적시 2루타로 동점을 만들었고, 곧이어 모창민의 결승 적시타가 터져 5대4, 짜릿한 1점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김 감독은 당장 눈앞의 성적보다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페넌트레이스를 넘어 포스트시즌에선 더 좋은 공을 상대해야만 한다.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창단 첫 4강, 이렇게 NC는 조용히 가을야구를 준비하고 있다.
창원=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