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하이마트에서 납득하기 힘든 대형 사기사건이 벌어졌다. 직원이 고객 돈을 횡령해 30여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이중 상당수는 혼수 가전제품을 장만하려던 신혼부부였다. 롯데하이마트는 최근 본사 차원에서 대책팀을 꾸려 진상 파악은 했지만 피해 보상에는 미온적이다.
회사원 송 모씨(28)는 지난 5월 24일 롯데하이마트 대구 상인네거리 지점을 찾았다. 결혼한 지 한 달, 신접살림에 필요한 가전제품을 사기 위한 즐거운 발걸음이었다. 가전 코너에서 물건을 살피던 중 이 모 팀장(32)이 밝은 얼굴로 다가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고 했다.
송씨가 산 제품은 TV, 세탁기, 에어컨, 냉장고로 가격은 총 540만원. 이씨는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할인혜택과 일정기간 뒤 돈을 돌려주는 캐시백 행사가 있다며 65만원 캐시백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하이마트 포인트 26만원, 사은품 4종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신용카드 1장을 만들고 현금 700만원을 예치해야 한다고 했다. 송씨는 카드 신규발급은 직원 실적차원에서 어느 정도 수긍이 됐지만 현금 예치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송씨가 머뭇거리자 이씨는 "현금으로 다른 물건을 잡아두면 그 물건에 대한 실적이 쌓여 추가 인센티브 지급이 가능하다"고 둘러댔다. 또 자신이 우수사원이어서 가능한 독특한 판매정책이라고 했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송씨 앞에 이씨는 700만원짜리 정식 물품구입 영수증을 뽑아주며 안심시켰다.
영수증에는 품목과 가격이 적혀있고, 롯데하이마트 로고까지 선명했다. 더욱이 지점 직원 소개 게시판엔 이씨 얼굴과 직함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어 의구심을 덜 수 있었다.
그날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700만원을 돌려주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약속했던 캐시백과 포인트, 사은품 4종은 지급되지 않았다. 이씨가 계속 전화를 피하자 송씨는 지점에 항의방문을 했고, 사건 전모를 알게 됐다.
이씨는 같은 수법으로 여러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계좌로 돈을 송금 받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 파악된 피해자만 36명, 총 피해액은 10억원에 육박했다. 이씨는 경찰에 자수했고, 사기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그동안 사기 쳐 받은 돈은 다 쓰고 수중에는 돈 한 푼 없는 상태였다.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는 피해자들은 직원관리를 허술하게 한 롯데하이마트의 책임 있는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송씨는 스포츠조선 소비자인사이트(www.consumer-insight.co.kr)에 억울한 사연을 올렸다. 송씨는 "어이가 없었다. 물건을 사는데 직원 얼굴보고 사진 않는다. 대기업인 롯데하이마트를 믿고 사는 것 아닌가. 이씨의 사기 행각을 회사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 이전 근무지에서도 문제가 발생했고, 대구 지사에서도 두 차례 경고를 한 것으로 안다. 매출 올리기에만 급급해 직원관리에 소홀했던 롯데하이마트는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는 것만 막고 있다. 아내는 이 일로 마음고생이 심해 몸져누웠다. 피해자 중엔 만삭의 임산부도 있다. 많은 신혼부부들이 결혼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날벼락을 맞았다"고 말했다.
롯데하이마트 본사는 경찰 조사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이씨는 사실 팀장이 아니고 일반 평사원이다. 편의상 지점 직원들끼리 팀장으로 불렀던 것 같다. 혼수가전 코너 담당자도 아니다. 원래는 PC코너 판매 담당자다. 도박 등 개인적인 일로 고객 돈에까지 손을 댔던 것으로 안다. 물품 판매수금 과정에는 문제가 없어 나쁜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 회사가 도의적인 책임은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개인 범죄다. 이씨가 자수해 조사를 받고 있어 계좌조회 등 피해사실이 밝혀지면 회사차원의 보상 용의는 있다"고 밝혔다. 롯데하이마트 본사는 직원을 파견, 피해자들을 상대로 한 차례 사정청취는 했지만 이후 책임 있는 답변이나 보상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가전전문인 하이마트는 2012년 7월 롯데쇼핑이 인수, 그해 12월 롯데그룹 계열사가 됐다. 현재 전국매장은 420개, 종업원은 3800여명이다. 지난해 매출은 3조5190억원, 영업이익은 1848억원에 달했다.
매장이 많다보니 매장간 경쟁도 치열하고 직원간 판매경쟁도 만만찮다. 이번 사건 시발점도 롯데하이마트의 판매촉진책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롯데하이마트는 판매우수사원을 선정해 표창도 하고 각종 인센티브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편법을 동원해 실적을 올리는 일까지 생긴다. 실적 최우선주의에 묻혀 부적절한 판매행태가 근절되지 않은 셈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