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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로이칼럼]한국에도 '레전드 지정석'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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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야구장은 예전에 비해 좌석이 다양하게 구분돼 있다. 한국에는 오래 전부터 중앙지정석이나 탁자지정석이 있었는데, 일본은 프로야구를 혼자 보는 팬이 많아 그룹 단위로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5∼6년 전부터 새로운 야구팬 창출을 목적으로 대부분의 야구장에 테이블석이 신설되고 있다.

이벤트성 티켓도 등장했다. 그 중 하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도쿄돔에서 판매되고 있는 '레전드 시트(legends seat)'다. 이 좌석엔 요미우리 출신 은퇴선수가 관중석에 앉아 해설을 한다. 레전드 시트 티켓을 구입한 관중은 이어폰을 통해서 은퇴선수의 해설을 들으며 야구를 관전한다. 또 레전드에게 사전에 신청한 질문의 답도 들을 수 있다. 해설을 하는 레전드들은 매 경기 다르다. 예매 전에 해설자의 일정을 공개한다. 팬들은 이 일정을 보고 좋아했던 선수가 담당하는 날짜를 찾아 예약할 수 있다. 레전드 시트의 가격은 도시락을 포함해 1만5400엔(약 15만4000원)이다. 다른 지정석에 비해 4배 정도 비싸지만 인기가 높다.

이 고가의 티켓은 어떤 사람들이 구입할까. 요미우리 구단 관계자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위해 특별한 날의 선물로 가족들이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 했다.

지난 12일 한국에서도 요미우리 레전드 시트와 비슷한 경기관전이 이뤄졌다. 필자가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2003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 관전투어'였다. 참가자들은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SK 와이번스전을 UHD TV석(중앙테이블석)에서 지켜볼 예정이었다. 그런데 삼성의 카도쿠라 켄 BB 아크 코치가 필자에게 "저도 그날 1군 경기를 볼 예정인데, 그 때 제가 관광객들 옆에서 같이 볼게요. 그렇게 하면 그 분들이 더 재미있게 한국 야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뜻밖의 제안을 했다.

카도쿠라 코치의 제안으로 '즉석 레전드 시트'가 이뤄졌다. 10명의 투어 참가자들이 1이닝에 1명씩 카도쿠라 코치의 옆자리에서 생생한 해설을 들었다. 이번 투어에 참가한 40대 남성은 "카도쿠라 코치와 같이 야구를 보고 해설을 들으면서 투수의 심정을 잘 알게 됐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또 카도쿠라 코치가 예전에 뛰었던 주니치 드래곤즈 팬이라는 60대 남성은 "주니치 시절의 뒷 이야기도 들어 재미있었다"고 했다.

한국은 테이블석이나 스카이박스 등 단체로 즐기는 좌석이 많아 레전드 지정석의 도입이 일본 보다 쉬울 것 같다. 레전드 지정석은 올드팬을 야구장에 다시 불러들일 수 있고, 팬은 팀의 역사를 재확인할 수도 있다. 또 은퇴 선수는 자신의 경험을 팬들에게 알릴 수도 있고, 인재의 유효한 활용으로 연결된다.

'레전드'라고 해서 특별한 수상 경험이 있는 선수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좋아했던 추억의 선수가 있다. 그런 인물이 레전드가 아닐까. 그 레전드가 자기 옆에서 같이 야구를 보고 현역 시절의 이야기를 말해 준다면 잊지 못 할 추억이 될 것이다.

한국에 레전드 지정석이 생긴다면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야구를 보고싶습니까. <일본어판 한국프로야구 가이드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