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월드컵 트로피와 처음으로 입맞춘 것은 1954년 스위스 대회 때다.
나치 체제에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이었던 독일은 1950년 브라질 대회에 국제축구연맹(FIFA) 징계를 받으면서 출전하지 못했다. 예선을 통과해 나선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도 독일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유럽의 중심은 페렌츠 푸스카스를 앞세워 '무적의 마자르'라는 별명을 얻었던 헝가리였다. 헝가리는 조별리그를 사상 처음으로 밟은 태극전사들에게 0대9 참패의 수모를 안기며 최다 점수차 승리를 거둘 정도로 막강한 공격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우승은 프리츠 발터가 이끄는 서독의 차지였다. 헝가리와의 결승전에서 3대2로 역전승을 하면서 '베른의 기적'을 완성했다.
처음으로 별을 단 독일은 이후 월드컵의 강자로 떠오르면서 매 대회 우승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 개최국 잉글랜드에 패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이어진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도 4강 문턱을 넘지 못하며 고개를 떨궜다.
1974년 안방에서 가진 월드컵이 두 번째 우승 무대가 됐다. 유력한 우승 후보는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였다. 토털풋볼의 위력이 그대로 발휘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독은 조별리그서 라이벌 동독에 패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를 샀다. 하지만 조별리그를 통과한 뒤 특유의 뒷심을 발휘하면서 결국 결승행에 성공했다. 네덜란드를 상대로 끈질긴 수비와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2대1로 이기면서 20년 만에 또 다시 트로피의 주인이 됐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선 2대회 연속 준우승의 한을 풀면서 세 번째 역사를 썼다. 앞선 1986년 멕시코 대회 결승전에서 패한 아르헨티나와 만나 1대0으로 이겼다. 당시에도 디에고 마라도나가 버틴 아르헨티나에 밀릴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지만, 로타르 마테우스를 앞세운 독일의 조직력이 결국 빛을 발했다.
이후 독일에겐 만년 우승후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좀처럼 미소 짓지 않았다. 1994년 미국 대회와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선 잇달아 8강에서 멈춰섰다. 2002년 한-일 대회에선 결승에 올랐지만, 브라질에 0대2로 완패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국서 열린 2006년 대회와 2010년 남아공 대회 모두 독일은 3위에 그쳤다.
최근 유럽에서 두각을 드러낸 독일 분데스리가는 주목을 받았지만, 전차군단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다. 브라질월드컵 우승후보 0순위는 네이마르를 앞세운 브라질이었다. 독일이 4강에서 브라질을 만났을 때 '4강징크스'라는 달갑지 않은 단어가 독일 주변을 휘감았다. 그러나 독일은 브라질을 상대로 7대1이라는 월드컵 4강 사상 최다골차 승리를 거두면서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결승전에서는 리오넬 메시를 앞세운 아르헨티나에 밀릴 것이라는 우려를 떨치고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결국 가슴에 4번째 별을 달았다.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