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과 술은 어제 오늘의 관계는 아니다. 마치 애증의 친구 사이 같다. 술의 양이 지나칠 때는 싸움으로 번져서 말썽이 됐다. 오히려 도수를 조절해 반입을 허용해주면서 술로 인한 야구장의 문제는 줄었다는 얘기가 지배적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비하면 요즘 야구장에선 술로 인한 사건 사고가 많이 줄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술병을 그라운드로 투척하는 사고가 빈발했다. 1986년 광주 무등야구장 앞에는 술병보관함까지 있었다. 입장 관중이 술병을 갖고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한 일환이었다.
술의 반입을 금지시켰을 때는 부작용이 심각했다. 숨겨서 가져 가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들이 쏟아졌다. 일부 팬들은 줄로 매달아서 끌어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막는게 대수는 아니었다. 도수를 정해서 마실 수 있게 해주자 오히려 음주 사고가 줄었다. 현재 전국 9개 야구장에선 맥주(알코올 도수 5도 이하) 정도의 주류를 판매하고 있다. 또 맥주캔을 들고 가서 마실 수도 있다.
요즘 야구장의 음주 문화는 예전 처럼 과격함은 사라졌다. 올해 음주 사고 중 대표적인 건 광주구장에서 있었던 심판 판정에 불만을 가진 취객이 난입해 심판과 몸싸움을 벌인 경우였다. 여전히 관중석이 꽉 차지 않는 평일 야구장 구석에선 술판이 벌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게다가 금지된 흡연까지도 이뤄지고 있다. 그래도 술병을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는 그라운드로 집어던지는 사고는 거의 사라졌다.
요즘 야구장의 음주 문화는 술을 은근히 권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술에 대해 유난히 관대한 우리사회의 문화와 맞닿아 있다.
요즘 대부분의 구단들이 볼거리와 마케팅 차원에서 맥주 빨리 마시기 게임을 한다. 몇명의 참가자가 맥주를 순식간에 마셔치운다. 부상은 대개 협찬사의 맥주일 경우가 다수다. 경쟁을 시켜놓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죽기살기로 할때가 많다. 그 장면을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해준다. 다른 관중들은 그걸 보면서 박수치고 좋아한다. 가족과 함께 온 청소년(미성년자)들도 그 광경을 본다.
구단은 공수 교대 시간의 하나를 이런 이벤트로 채우고 있다. 술 제조 판매 회사는 판촉 행사로 효과 만점이다. 구단도 술 회사도 서로 좋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잘 해서 덤으로 상품까지 맥주를 받아가는 승자도 기분이 나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게임 이벤트가 아직 술을 마실 수 없는 미성년자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한다. 술을 마시는 걸 막을 필요는 없지만 권장하는 걸 자제시킬 필요는 있다.
또 요즘 야구장 테이블석에는 수북히 쌓인 맥주캔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9개 구장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마치 피라미드 처럼 쌓는 경우도 있다. 주량의 차이는 있겠지만 충분히 취하고 남을 정도의 양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이런 풍경은 마치 자신들이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고 세다는 걸 드러내는 것 처럼 비춰진다. 또 쌓인 맥주캔이 방송 전파를 타고 전국 안방으로 중계되기도 한다.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치킨을 먹는 건 야구팬들에게 즐거운 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야구장이 청소년들 또는 일반 국민들에게 술을 권하는 곳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
국내야구만의 문화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 보다 프로야구를 훨씬 오래한 메이저리그나 일본에서도 야구장에서 맥주캔을 이렇게 쉽게 볼 수는 없다. 플라스틱 용기에 맥주를 따라주는게 일반화돼 있다. 물론 국내 구단에서도 맥주통을 맨 판매원들이 생맥주를 플라스틱 용기에다 파는 경우도 있다. 규정에서 정한 대로 절제하면서 술을 마시고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야구장이 아무리 도수가 약한 맥주라지만 더이상 술을 권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해서는 곤란하다.
우리 사회는 야구장이 아니더라도 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 돼 버렸다. 야구장에서라도 최소한 서로 술을 권하지는 말자.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