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지독하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이라는 표현이 맞다. '신의 한수'에서 이범수가 맡은 살수라는 인물이 그렇다. 이 인물을 이범수가 연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가정이다. 그만큼 이범수는 '신의 한수'에서 살수 역을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최근 카리스마 있는 악역을 주로 맡던 배우 최민식이 이순신 장군으로 변신한 이 때, 그 자리를 가득 메워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범수는 "모처럼 캐릭터가 선명해 배우로서 연기력을 펼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고 살수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악역이라는 설정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다. 극단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그게 더 매력적인 것 같다"고 악역의 매력에 대해 설명했다.
사실 그는 2006년작 '짝패'에서 악역 필호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짝패'에서 장필호라는 악역을 연기한 적이 있죠. 그때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악역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났어요. '짝패'에서 필호는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고 싶은 콤플렉스의 소유자였죠. 농담도 하고 여유도 있는 인물이었어요. 하지만 이번 살수는 냉혹하고 망설임이 없는 '절대악'이라고 할 수 있죠. 잘못하면 통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알 수 없는 인물을 만들어야 더 악하게 보일 것 같았죠. 묘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살수예요."
이범수는 일단 외향적인 면부터 살수로 변신했다. "기름지고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 무테 안경, 단정한 수트를 통해 예민하리만치 깔끔하고 날카로운 인물, 한기를 느끼게 하는 인간을 묘사했죠. 말로 겁주고 그런 악역이 아니라 눈으로 말하는 캐릭터를 만드려고 했어요." 전신 문신을 위해서 꼬박 하루 동안 앉지도 못하고 서있기도 했다. "배꼽(이시영) 앞에서 '넌 내 소유물이야'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이었는데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이번 작품에서 본인의 연기에 만족하나"라는 질문에는 "항상 아쉽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생각나는 장면은 있었다. "마지막에 주님(안성기)과의 신에서 '이제 너는 죽었어'하고 주님을 응시하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봐도 좀 섬뜩하더라고요.(웃음)"
'신의 한수'는 이범수 외에도 정우성 안성기 안길강 김인권 이시영 등 많은 배우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이른바 '멀티 캐스팅' 영화라고 불린다. "멀티 캐스팅이라는 것이 핵심은 아닌 것 같아요. 얼마만큼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냈는가가 중요한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팀과 함께 하고, 배우로서 연기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자유롭게 만들어지나가 중요한 것이지 멀티캐스팅이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바둑 액션을 표방한 '신의 한수'는 자칫 바둑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든 영화로 생각될 수 있다. "그래서 더 많이 고민을 했어요. 바둑을 모르시는 분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영화로 만들기 위해서요. 우리 영화에서 바둑은 바둑이라고 보다는 도박에 가까워요. 또 액션을 만드는 중요한 장치죠. 바둑을 전혀 모르시는 분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장담합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