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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에서 길을 찾자]③콘텐츠의 문제,K-리그 재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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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 16강 탈락 직후 '한국축구의 젖줄' K-리그를 돌아보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2002년 한-일월드컵 3-4위전 현장 카드섹션은 'CU@K리그'였다. 2006년 독일, 2010년 남아공월드컵 후에도 비슷했다. 다시 제자리다. 대다수 축구팬들은 대표팀을 사랑하지만, K-리그는 외면한다. 스마트 시대, 볼거리, 읽을거리는 차고 넘친다. 수십개의 고화질 카메라가 현란하게 찍어올리는 해외축구 중계에 길들여진 팬들에게 K-리그는 시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한국축구의 미래, K-리그는 '더' 재밌어야 한다.

▶경기가 재밌어야 한다

월드컵 무대는 승패가 중요하지만, 리그 경기는 내용이 중요하다. 지난해 승강제 도입 이후 승점에 대한 강박관념이 감독들을 짓누르고 있다. 창의적인 전술이나 용병술보다 안정을 택한다. 승점1을 위해 비기는 작전도 서슴지 않는다. 축구는 90분 드라마여야 한다. 팬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은 승패와 무관하게 화끈한 경기력이다. 폭풍같은 스피드와 체력, 감독들의 지략 싸움, 투혼과 감동, 진한 여운이 남는 경기다. 90분 내내 패스가 뚝뚝 끊기고, 골 하나 없이, 무기력하게 공만 왔다갔다하는 경기를 보자고 돈과 시간을 투자할 팬은 없다. 실제 경기시간(APT·Actual Playing Time)도 재미있는 경기의 바로미터다. 팬들은 끊김없는 경기를 원한다. 2010~2011기준 유럽리그 평균 APT는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62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독일 분데스리가가 각 61분이었다. 2014시즌 K-리그 클래식 12라운드까지의 평균 APT는 58분2초로 집계됐다. FC서울이 61분9초로 최장시간, 부산이 54분28초로 최단시간이었다.

▶스타가 있어야 한다

지난해 연봉공개 이후 K-리그 클래식 각구단 모기업들이 지갑을 닫았다. '토종군단' 포항의 트레블은 위기를 극복한 위대한 성과지만, 이는 타구단들에게 투자를 기피할 명분이 됐다. 실제로 지난 겨울 이후 올 여름까지 K-리그 이적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거물이 없다. 스타가 없다. 당연히 이슈도 없다. 한때 K-리그는 외국인선수 싸움이었다. 모따 에닝요 데얀 몰리나 라돈치치 등 특급 외국인선수들이 치고받는 그라운드는 뜨거웠다. 올시즌 득점 랭킹 10위권 외국인선수는 드로겟(제주, 3골)이 유일하다. 투자 위축은 당연히 리그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 월드컵에서 맹활약한 스타선수들은 유럽으로 갔다. K-리그에서 지명도를 얻은 선수들은 중국이나 중동리그로 갔다. 대학생 선수들은 경험을 목적으로 앞다퉈 J-리그를 향한다.

▶감독과 선수가 재밌어야 한다

'봉동이장'(최강희 전북 감독) '황선대원군'(황선홍 포항 감독) '철퇴왕'(김호곤 전 울산 감독) '효멘'(윤성효 부산 감독) 등은 K-리그 사령탑의 닉네임이다. 스타일과 스토리가 담긴 유쾌한 별명이다. K-리그가 재밌어지려면 선수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철학과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명확한 축구 색깔과 캐릭터로 명장과 구단의 스토리를 만들고, 팬들과 공유해야 한다. 선수들의 프로 의식도 중요하다. '프로리그의 주인은 팬'이라는 신념이 머리가 아닌 몸에 배야 한다. '최고령 골키퍼' 김병지(전남), '라이언킹' 이동국(전북) 등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은 늘 팬들에게 먼저 다가선다. 울산의 젊은 선수 김신욱, 김승규도 좋은 예다. 경기 전후 사인과 사진촬영은 이들에게 '이벤트'가 아닌 '습관'이다. 울산 경기가 있는 날이면 믹스트존엔 어김없이 팬들이 쇄도한다. 스타선수가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소통의 스킨십은 팬들을 그라운드로 이끄는 힘이다.

▶구단 직원부터 재밌어야 한다

스포츠단은 다이내믹한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이다. 재밌는 사람이 재밌는 콘텐츠를 만든다. 일부 구단을 제외하고 각 구단 인력 상황은 열악하다. K-리그 클래식 12개 구단 조사결과, 대부분의 구단이 4~8명의 홍보마케팅직원을 두고 있다. FC서울이 유소년 홍보직원까지 포함, 25명으로 가장 많다. 전북과 인천이 각 8명, 울산, 수원, 포항, 경남이 각 6명이었다. 기업구단 제주는 4명으로 상주상무와 같다. 기업구단인 전남은 3명, 부산은 2명으로 12개 구단중 가장 적다. 홈경기 진행과 준비는 육체노동에 가깝다. 일부 구단의 경우 관중석 의자를 닦고, 형광등을 바꾸는 일까지 해야 한다. 경기전후 거리홍보, 관중 안내, 하프타임 이벤트 기획 및 진행, 미디어와 홈페이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리도 해야 한다. 홍보-마케팅이 합쳐진 경우 광고영업도 한다. 격무에 시달리다보면, 정작 중요한 '콘텐츠'는 뒷전이다. 선택과 집중이 불가능한 환경이다. 팬 중심이 아닌 철저히 선수와 구단 중심이다. 선수단 및 팬들과 교감하고, 콘텐츠를 기획하고, 미디어에 스토리를 전달할 여유가 없다. 열정 넘치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독려할 내부의 '열린' 의사결정 과정도 필요하다.

이밖에도 연고제 확립 등 '재미'를 위해 해야할 숙제들은 산적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K-리그가 재미있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단 1명의 팬'이다. 몇년전 핌 베어백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말이 최근 다시 회자되고 있다. '그들은 평소 축구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대표팀은 언제나 브라질처럼 플레이하길 원한다. 또 자국리그는 외면하면서도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길 갈망한다.'

2002년 월드컵 현장에서 경험했듯 팬을 부르는 건 팬이다. "K-리그, 직관(직접 관전) 해보니 제법 재밌더라"는 입소문이 K-리그, 아니 한국축구 변화의 시작점이다.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