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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정성룡에 가렸던 '넘버2'김승규,눈물만큼 땀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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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H조 최종전, 벨기에전 0대1 패배는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24세 골키퍼 김승규는 희망이었다. 에당 아자르 ,야누자이, 펠라이니 등 TV로 보던 '스타군단' 벨기에를 상대로 폭풍선방쇼를 펼쳤다. 벨기에전 이후 축구 팬들은 김승규의 활약에 뜨겁게 환호했다. 월드컵 데뷔전에서 누구보다 당당했던 '수문장' 김승규가 스타덤에 올랐다. 각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김승규는 유년기부터 주목받아온 엘리트 골키퍼다. 울산 유스팀 현대중 이후 연령별 대표팀을 두루 거치며 주전 골키퍼로 활약해왔다. 2007년 국제축구연맹(FIFA) 17세 이하 월드컵, 2009년 20세 이하 월드컵 등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시련도 많았다. 2008년 1년 울산 현대에 입성한 김승규는 '넘버3'였다. 최고의 국대 골키퍼 김영광에게 가렸다. 2011년까지 한자릿수 출전을 기록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당시 울산에서 김승규를 지도했던 김성수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코치는 "개인 훈련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오죽하면 훈련량을 줄이라는 주문을 했을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결정적인 순간 깜짝 등장해 폭풍선방 능력을 보여주며 K-리그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2008년 11월 22일 포항과의 6강 플레이오프 연장 후반 14분 교체투입, 최고의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승부차기에서 노병준과 김광석의 슈팅을 잇달아 막아내며 승리를 이끌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쓰라린 시련이었다. 2012년, 김승규의 팀내 자리는 여전히 김영광의 백업이었다. 김 코치는 "승규를 올림픽대표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워낙 영광이의 경기력이 좋다보니 쉽게 교체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암운이 드리웠다. 올림픽 직전 새끼손가락 골절 부상을 했다. 깁스만 6개월했고, 복귀하는데 8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라이벌 이범영이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선배 정성룡이 와일드카드로 발탁됐다. TV로 절친 동료들의 올림픽을 지켜봐야 했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눈물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김승규는 지난해 정규리그 3라운드부터 종아리를 다친 김영광의 공백을 메웠다. 이후 승승장구였다. 기적같은 반사신경으로 슈퍼세이브를 이어갔다. 32경기에서 27실점의 방어력을 보여주며 철퇴축구 울산의 최후방을 든든하게 지켜냈다. 2013년 8월 14일 홍명보호에 재입성한 김승규는 페루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김 코치는 "승규는 준비된 스타다. 때가 왔을 때 기회를 낚아챌 수 있는 것은 완벽한 준비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김승규는 이날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세번째 경기에 투입돼 긴장도 됐지만, 작년에야 비로소 팀에서 주전으로 게임을 뛰게 된 만큼 기다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뛰어야하는지 알고 있었다. 준비엔 어려움이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관중이 많아서 긴장이 됐는데, 초반을 잘 넘겨야겠다고 다짐했고 전반을 무실점으로 마쳤다. 후반 제실수로 실점하게 돼 죄송하다"고 했다. 실제로 본 스타군단 벨기에에 대해 "상대 선수들이 얼굴만 봐도아는 선수다보니까 긴장도 했는데 뛰어보니 똑같은 선수더라"라고 당당하게 답했다. "어떤 점이 가장 후회로 남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월드컵 첫경기 하기전부터 후회없는 경기를 하자고 했다. 오늘도 들어가기 전에 우리끼리 절대 후회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마지막이다 모든 걸 버리고 준비하자고 했다. 두 번째 알제리와의 경기가 가장 아쉽다"고 답했다.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