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창조의 꿈이 사라졌다.
27일(한국시각) 브라질 상파울루의 아레나 코린치안스에서 가진 벨기에와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H조 최종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그라운드에 선 11명의 태극전사들은 모두 고개를 떨궜다. 4년 간 절치부심한 꿈의 무대, 세계를 놀라게 하고자 했다. 그러나 벨기에전에서도 패배의 아쉬움에 그쳤다. 손흥민(22·레버쿠젠)은 대성통곡했고, 김영권(24·광저우 헝다)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감싼채 일어서지 못했다. 관중석에서는 붉은악마들의 '대~한민국' 구호가 메아리쳤다. 투혼을 발휘한 태극전사들을 향한 위로와 16강행 실패의 아쉬움을 4년 뒤 러시아월드컵에서 씻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었다. 모두가 울었다. 상파울루의 밤은 눈물이었다.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은 두 얼굴이었다. 벨기에 취재진들은 선수들이 나오는 입구부터 진을 치고 자국 선수들에게 16강, 8강 전망을 묻기에 바빴다. 한국전에 대한 소감은 없었다. 이들에게 애초부터 한국전은 '16강으로 가기 전 치르는 워밍업'과 같았다.
태극전사들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쉽게 말을 걸기 힘들 정도로 침울했다. 눈물을 흘린 선수들은 불거진 얼굴을 감추려고 애썼다. 간신히 자리에 서서 소감을 전하는 선수들은 월드컵 소감을 말하는 대목에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손흥민은 "이번 월드컵에 함께한 대표팀 모두에게 너무 감사하다. 지도자, 선수 뿐만 아니라 지원스태프들에게도 너무 고맙다. 형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받았는데 못 돌려준게 아쉽다"고 울먹이면서 "팬들이 좋지 않은 결과에도 응원을 아끼지 않아주신 부분에 너무 감사하고 죄송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승규도 경기 후 "경기장에 계속 남고 싶었다. 1경기를 더 하고 싶었다"고 통한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벨기에전에서 벤치를 지킨 박주영(29·아스널)은 "오늘 경기에 뛴 선수들과 이야기를 해줬으면 좋겠다. 죄송하다"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날 경기 직전 소속팀 아스널로부터 공식 방출 통보를 받은 터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운명보다 후배들을 이끌지 못한 책임감이 더 앞서는 모습이었다.
대표팀의 '미스터 쓴소리'였던 이청용(26·볼턴)도 이날 만큼은 침묵했다. 취재진의 요청에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굽혀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부상을 딛고 극적으로 합류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한 박주호(27·마인츠) 역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후반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은 지동원(23·도르트문트)도 침울한 표정을 지은 채 믹스트존을 빠져 나갔다.
벨기에전을 마친 홍명보호는 28일 베이스캠프인 이구아수로 이동해 휴식을 취한 뒤, 29일 상파울루 과룰류스국제공항을 출발해 미국 LA를 경유, 30일 새벽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귀국 뒤에는 짧은 해단식을 갖고 브라질월드컵의 여정을 마무리 한다. 상파울루(브라질)=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