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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전, '끝' 아닌 '시작'이 되기 위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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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함이 채 아물기도 전에 벨기에를 만난다. 이번 브라질월드컵 조별예선 '끝'이 아니라, 2015 아시안컵과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및 본선을 준비하는 '시작'이란 관점에서 벨기에전을 봤으면 한다. 행여 하나라도 빠질까 16강행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조심스레 세어보지만, 일단은 준비한 것을 모두 쏟아 부어 지더라도 후회 없는 경기를 하는 것이 먼저다.

가장 걱정되는 건 그라운드 내 '소통' 문제다. 가나전을 비롯해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된 부분이다. 가령 공중볼을 단독으로 처리하는 장면에서 무의미하게 볼 소유권을 넘겨준 한국영과 구자철의 헤더가 그랬다. 세컨볼 싸움을 해주기에는 동료와의 거리가 너무 멀었던 상황, 홀로 볼을 컨트롤해 다음 상황을 준비하는 게 맞았다. 단, 공중볼에 시야가 한정된 선수는 조급한 마음에 일단 뛰어오르기 마련이고 빨리 머리를 대려 하는 게 일반적이다. 크게 소리 질러 상황을 알려주는 소통이 부재했다. 언뜻 보기엔 별것 아닌 듯 싶지만, 이러한 사소한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볼이 수비 진영으로 빠르게 들어올 때엔 더 심각할 수 있다.

첫 골을 내준 과정, 직후의 대처법 모두 아쉬웠다. 앞선에서 돌던 볼이 급작스럽게 넘어와 준비 동작이 부족할 수 있었고, 롱패스의 궤도가 까다로워 뒤로 물러나는 판단력에 차질이 생길 수 있었다. 단, 김영권-홍정호 라인이 재빨리 분담해 한 명은 볼을 쫓고, 다른 한 명은 상대 공격수와의 어깨 싸움을 통해 동선을 옆으로 밀어내면 될 일이었다. 두 선수 모두 발이 빠르기에 속도 경합이 가능한 장면이기도 했다. 이미 내준 골을 번복할 수도 없었고, '소통'으로써 멘탈을 다잡는 것만이 절실했다. 하지만 월드컵에 처음 나선 수비진, 특히 아시아나 올림픽 무대 혹은 A매치 출장 경험이 전부였던 이들이 극복해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3골이 들어가는 데 1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영표, 차두리처럼 "괜찮아"를 연발하며 격려할 선배는 없었다. 여기엔 20대 후반-30대 초중반 대형 수비수가 부재한, '세대의 불균형'이란 구조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다. 실점의 중압감은 20대 중반 수비진이 수용할 범위를 넘어섰고, 이어 곧장 코너킥까지 얻어맞는다. 헤더에 나선 상대의 사전 움직임이 까다로웠던 것도, 힘을 싣고자 러닝 점프를 시도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평범한 경합 상황에서 타점을 방해하지 못한 게 원인. 2002 한일 월드컵 이태리전 비에리를 끝까지 몰아내려던 최진철의 수비법과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같은 실점이지만, 체감하는 좌절감은 급이 다르다.

중앙 수비는 뒷공간으로 들어오는 롱패스에 또다시 좌절했다. 미리 콜을 통해 동선이 얽히지 않게끔 볼 처리할 사람을 정하고, 그다음 수비 동작을 준비해야 할 장면이었다. 지탱해놓은 기둥이 걷잡을 수도 없이 연이어 무너지던 상황, 선발로 쓰지도 않을 곽태휘를 브라질까지 데려가며 수비진에 안정감을 기하려 했던 홍명보 감독의 고뇌도 함께 느껴졌다. 후반 들어 내준 네 번째 골에 폐허가 됐다. 비단 수비형 미드필더, 수비진만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수비 리딩을 주도해야 했던 골키퍼 정성룡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뒷선에서 지켜보며 많은 대화로 어린 수비진을 이끌지 못한 아쉬움이 상당히 크다.

1998 프랑스 월드컵과의 평행 이론을 이룬다. 벨기에 대표팀의 전력, 16강을 앞둔 상황 등에서 다르지만, 2차전에서 완패한 대표팀이 '최악'의 상태로 이들을 맞는다는 데엔 큰 차이가 없다. 기술적인 한계도 분명 존재는 하겠지만, 일단은 정신적으로 잘 준비만 한다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후반전 시작할 때처럼 정신 바짝 차리고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라는 손흥민의 말에 정답이 있다. 주눅 들지 말고, 방심하지 말고 90분 동안 대표팀만의 페이스에 몰두하면 된다. 선제 실점에 머리가 깨지고 경련이 나면서도 끝내 동점골까지 만들어낸 16년 전 선배들의 집념을 재현해 보이길 바란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