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투수는 어떤 포수가 앞에 있든 제 몫을 한다. 그러나 분명히 호흡이 잘 맞는 포수가 공을 받게 될 때 투수는 더 좋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투수는 '전담 포수'를 두기도 한다. 과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서 맹활약 할 때 '채드 크루터'라는 전담포수와 좋은 성적을 합작한 것이 좋은 사례다.
류현진에게도 이런 인물이 있다. 류현진이 포수를 크게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분명 A.J.엘리스와 배터리를 이룰 때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곤 했다. 부상에서 돌아와 류현진과 호흡을 맞춘 엘리스 역시 류현진의 '도우미' 역할을 확실히 했다.
류현진은 17일(한국시각)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동안 3안타(1홈런) 1볼넷 6삼진으로 단 1점만 허용하며 시즌 8승(3패)째를 수확했다. 평균자책점도 3.18로 낮춰 다시 2점대 복귀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 시즌 13번째 선발 등판에서 류현진은 시즌 9번째 퀄리티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달성했다. 그러면서 팀내 다승 공동 1위가 됐다. 명실상부 메이저리그 A급 선발로서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한 셈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바로 이전 경기였던 지난 12일 신시내티 레즈전에 비해 탈삼진은 늘었고, 피안타율과 WHIP 그리고 실점은 줄었다. 지난 경기와 차이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원정에서 홈으로 이동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호흡을 맞춘 포수가 원래 단짝인 엘리스였다는 것이다.
류현진의 성적이 나아진 요인은 원정과 홈 차이보다는 포수의 차이에서 찾는 것이 적합하다. 기록상으로 류현진이 엘리스와 호흡을 맞출 때 한층 좋은 성적을 냈기 때문이다. 물론 류현진의 공을 가장 많이 받은 포수도 엘리스다.
지난해 LA다저스에서 빅리그에 데뷔한 류현진은 17일 경기 전까지 총 4명의 LA다저스 포수와 호흡을 맞췄다. 그 중 엘리스와는 총 27경기, 165⅔이닝을 함께 치르며 2.9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 많은 호흡을 맞춘 대상은 베테랑 포수 라몬 에르난데스. 6경기에서 40이닝을 치렀는데, 평균자책점은 3.38이었다. 에르난데스는 올해에는 캔자스시티로 팀을 옮겨 류현진과의 호흡은 끝났다.
이어 팀 페더로위츠와는 5경기에서 31⅓이닝 동안 2.5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수치상으로는 가장 낮은 평균자책점이다. 그러나 경기수가 적다. 드루 부테라는 엘리스의 부상 이후 류현진과 4경기에서 배터리를 이뤘는데, 25⅓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91로 좋지 못했다.
결국 팀내 제1포수이자 류현진과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좋은 호흡을 이뤘던 엘리스가 '전담 포수'인 셈이다. 엘리스는 지난 5월26일 팀 동료 조시 베켓의 노히트노런 기록 달성을 축하던 중 그라운드에 떨어져있던 부테라의 포수 마스크를 잘못 밟아 오른쪽 발목 부상을 당했었다. 이후 재활을 마친 뒤 지난 14일에 복귀했다.
류현진과는 5월22일 뉴욕 메츠 이후 26일 만에 다시 짝을 이룬 것이다. 당시 류현진은 6이닝 동안 9안타 2실점으로 승리를 따낸 바 있다. 근 한 달만의 재회에서 류현진 한층 편안한 표정으로 투구에 임했다. 엘리스 역시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최고의 호흡을 보여줬다.
특히 엘리스는 공격에서도 류현진의 승리에 큰 몫을 했다. 2-1로 근소하게 앞선 5회말 2사 1, 3루에서 중전적시타를 치며 쐐기점을 낸 것. 콜로라도 타선이 앞선 4회초 솔로홈런으로 1점차까지 추격한 상황에서 엘리스의 타점은 상당히 큰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이로 인해 류현진은 이후 더 편안하게 투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수비와 공격에 걸쳐 엘리스는 확실히 '류현진 도우미'라는 점을 증명해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