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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원의 날쌘 돌파]페페 '뜨거운 가슴 속 차가운 머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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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 독일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끝난 뒤 이 선수의 머리 속이 궁금해졌다. 갑자기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전반 37분 페페의 박치기에 이은 퇴장 하나로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

페페의 박치기 전까지 경기를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너무 많았다. 독일은 '1명같은 11명'의 위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볼을 잡으면 나머지 선수들이 어디로 갈 지를 알고 있었다. 팀원들간의 신뢰가 없으면 나오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빌드업도 인상적이었다. 볼이 들어가야하는 위치에는 어김없이 독일 선수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기계적인 축구도 아니었다. 선수들 개개인 모두 남다른 기술과 창의성을 갖추고 있었다. 요하임 뢰브 감독의 맞춤 전술도 인상적이었다. 수비력이 좋은 필립 람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해 중앙을 견고하게 했다. 중앙 수비 요원인 제롬 보아텡을 오른쪽 풀백으로 돌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막기 위해서였다. 최전방에는 무게감 있는 원톱 대신 제로톱을 세워 공격의 다양함을 더했다.

포르투갈도 기회는 있었다. '11명같은 1명'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었다. 경기 하루전 공언한대로 호날두의 몸상태는 '110%가 되지 못한 100%'였다. 좋았다는 이야기다. 비록 경기 시작 32분만에 2골을 허용했지만 희망을 버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이번 월드컵은 '체력'이 최대 변수다. 앞선 열린 경기를 보면 70분 이후에도 체력을 유지하는 팀이 승리를 챙겼다. 포르투갈로서는 후반 중반까지 더 이상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버티는 전술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호날두를 적극 활용해 체력이 떨어진 독일 수비진을 공략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하지만 페페의 박치기 이후 이야기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지울 수 밖에 없었다. 페페의 박치기 퇴장이라는 블랙홀이 경기의 모든 이야기 거리를 잡아먹어 버렸다. 페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페페에게는 뜨거운 가슴을 컨트롤할 차가운 머리가 없었다. 넘치는 승부욕을 주체하지 못했다. 물론 승부욕은 필요하다. 상대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승부욕에도 정도가 있다. 도가 넘는 승부욕은 오히려 팀에 해악만 될 뿐이다. 페페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전반 초반 2골을 허용했다는 실망감이 분노로 바뀌었다. 경기장 분위기도 그를 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냉정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페페가 나간 이후 포르투갈은 공수 밸런스도 무너졌고 조직력은 사라졌다.

태극전사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수들에게 월드컵은 가장 큰 시합이다. 국민들의 기대치도 크다. 선수들도 분명 이 중요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다잡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 내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우리 선수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선배의 괜한 걱정으로 끝나겠지만 말이다.. 수원 삼성 감독